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심양고궁과 대륙침략의 자리 9.18역사박물관

달이선생 2024. 6. 5. 12:59

2024년 5월 20일부터 30일까지

북간도 조선족연변자치주 연길시와 두만강 북중 접경지 도문(남양), 한인 개척지인 용정시,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우리 역사 고구려 도읍 국내성인 집안시(만포시) 그리고 비류수가 흐르는 통화,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고토이자 고려와 조선 유민의 땅 심양까지 1천 km 오늘날 중국의 중심 북경으로 7백 km 상해까지 1천2백 km까지 일명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현장을 다녀왔다. 장장 3천 km의 '독립 로드'였다.

통화에서 이어지는 서간도 일대는 만주족이 많이 사는 곳이다. 곳곳에 그들이 신성시하는 버드나무가 가로수로 펼쳐져 있고 그들 농가 한켠에는 고구려의 2층 창고인 부경에 옥수수가 그득하다. 버드나무는 고구려 시조 주몽의 어머니 하백의 딸 유화부인의 상징이다. 청나라 이후 정립된 그들의 태초 신화는 결국 우리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더욱이 그들의 삶은 고구려의 생활문화인 부경이 남아 동화든 어쨌든 반농반목의 여진족의 지금의 만주족의 고유 생활문화로 남아있다.

심양은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땅이었다. 원나라 시절에는 원으로 끌려온 고려 유민들이 집단을 이루어 원나라에서 고려왕을 심양왕에 봉하였고 입성책동을 야기했던 부원배의 상징이다. 최영과 이성계 장군이 요동정벌을 단행했고 조선 후기 1636년 병자년의 난리에서는 청나라의 볼모로 소현세자, 소현세자빈 강씨, 봉림대군과 부인 장씨 등과 60만의 피로인들이 심양 땅에서 노예로 살거나 팔려나갔다. 고궁 하마비(만몽한 글씨, 우리나라 대청황제공덕비인 삼전도비와 유사) 앞에서는 연일 조선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 노예 흥정이 벌어졌고 속량되는 조선인 중 세자빈 강빈이 속량한 조선인은 조선관에 속하여 경작하여 많은 재물을 모아 운영비는 물론 지속적인 조선인 속량을 하게 된다.

고궁 노란 유리와를 올린 대정전 앞 뜰에는 명나라 화기인 '홍이포'가 전시되어 있다. 홍이포가 무엇인가? 네덜란드 상인의 힘을 빌어 명나라가 포를 개량한 대포이다. 이 대포가 그 위력을 드높인 일은 바로 명을 쳐들어 온 청태조 아이신주르 누르하치를 패퇴시켰던 무기이다. 이 대포의 포환으로 누루하치는 영웅의 삶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그곳에 홍이포를 놓는 중국의 자세는 흥미로운가 호기로운가

"勿忘 9.18(9.18을 잊지 말라)"

-江澤民(장쩌민)

근대에 들어서는 일본제국주의의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서 1931년 만주사변이 단행되고 만철이 폭파된 그 자리에 9.18역사박물관이 강택민(장쩌민) 주석 때 이루어졌다. 후문 벽면에 중국공산당 주석 강택민의 말은 분명하다. 전체적인 기획이나 전시는 우리의 독립기념관과 매우 유사함을 느낀다.

박물관에는 일제 침략이 어린 동자군을 침략의 선전물로 쓴 것을 확인함은 물론, 중국공산당의 여걸 쑨원의 부인 쑹칭링 여사, 외교 달인 주은래, 그리고 현대 중국의 아버지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후진타오(호금도), 시진핑(습근평)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