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거워진다'는 삼복이 지났지만 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남산 언저리를 천천히 걷고자 길을 나섰다. 북촌에서 한식 관련 기관이 하는 조청으로 고추장 만들기(식품명인체험홍보관)를 체험하고 맞은편 위치한 헌법재판소의 전시관이 있어 헌법과 헌법재판소를 이해를 하였다.
안국역을 지나 명동으로 길을 잡아 가면서 먼저 흥선대원군의 사저이자 고종이 태어나고 가례를 올린 운현궁을 본다. 대원군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는 대단위 한옥 건물로 사랑채 노안당, 안채 이로당 등 주요 건물들이 있다. 망국의 조선을 상징하는 곳으로 덕수궁과 더불어 의미가 깊다. 이어서 3.1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천도교 대교당과 인사동거리, 베를린장벽, 나석주 열사상(동양척식주식회사), 명동성당을 차례로 찾아간다.
잠을 잔 곳은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안기부)의 건물로 사용된 서울유스호스텔이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일본인이 거류지역을 형성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여러 유적으로 위치한다. 그 대표적으로 통감관저터, 통감부터, 신사(노기, 경성), 갑오역기념비(청일전쟁) 터, 한양 공원비 등이 '나라가 치욕에 이르렀던 길'로 국치길로 명명된 길 위의 주변으로 위치하고 백범광장이 있는 남산 공원까지 이어진다. 국치의 시작이었으나 시작과 끝으로는 무장독립운동의 효시가 된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던 우당 이회영 기념관이 유스호스텔 아래에 남산 공원에는 안중근 기념관과 백범 동상이 자리하며 우리 독립운동이 국치에서만 머물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스호스텔 입구의 '기억의 터(위안부 기림비). 9월 5일 서울시가 전격 철거)'처럼 우리가 겪은 역사적 비극은 상흔으로 존재한다. 이회영 기념관이 위치한 남산 예장 공원은 조선총독부의 관사가 있었고 그 흔적이 보존되어 있다.
사실 남산과 남산 언저리는 국운이 다하고 폐망한 나라 조선의 비극이 생생한 곳이나 이곳은 예로부터 북촌과 서촌에 대비되는 남산골로서 정계에는 다소 멀어졌으나 여전히 조선의 중요한 언로와 정신을 유지하였던 동인계 남인 등의 선비들의 주거 공간이었다. 물론 이회영 선생의 가문(본관 경주 백사 이항복 가계)이나 회동 정씨로 불린 동래 정씨가 서인이자 노론계 명문가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번 길에도 아쉬움이 크다. 서촌에서도 배화여자대학교내 위치한 문화유산에 대한 관람이나 답사가 제한되었다. 여기도 마찬가지 숭위여자대학교가 위치한 통감부터는 근처도 가지 못하였다. 운현궁의 양관 역시 덕성여자대학교내로 허락되지 않았다. 이렇게 문화유산이나 그 터에 이르는 것이 제한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불만이다. 보존과 보전을 떠나 사람들이 찾지 않고 기억에 머물지 못하는 공간과 장소가 무슨 문화유산이 될런지 한 숨만 나온다. 날도 더운데 더 덥다. 가는 길이 걸음이 무겁다.
서울 시민 2만여 명이 모금에 참여하여 조성된 '기억의 터'는 위안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 피해자로 살아온 삶을 추모하고자 일본제국주의의 시작의 상징이된 통감관저터에 조성된 기념물이다. 2023년 9월 5일 성추문에 휩싸인 임옥상 작가의 참여가 문제가 되면서 서울시가 전격 철거하였다. 철거 전 마지막을 본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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