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2023 수원 문화재 야행과 수원시 박물관 나들이

달이선생 2023. 8. 23. 21:03

 

 

특별한 것이 없다면 수원에 사는 이상 수원에서 펼쳐지는 여러 행사에 찾는 편이다. 집에서 가까운 화성행궁은 문화의 중심지가 된지 오래라 여러 행사들이 일년 내내 펼쳐지는데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화성 야행을 찾았다. 화성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야행은 해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갖가지 늦은 시간 여러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작년에는 수원천변에서 화홍문을 중심으로 비디오아트 등 눈요깃거리가 많았는데 올 해는 조금 달랐다. 그 중 눈이 간 것은 수원시가 발굴하고 수원에서 널리 알리고 있는 수원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프로그램이다. 이미 야행 이전에 연극이나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져 수원시민에게 소개된 인물들인데, 야행을 통해 거리극으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로 주목 받은 수원의 애국지사 기생 김향화 지사. 수원의 유관순으로 불리는 이선경 지사는 물론이고 우가키 총독을 암살하려다 붙잡힌 조득렬 지사 등 지금의 매교동 일대인 산루리의 애국지사들을 중심으로 만든 극이다. 김세환 지사가 극을 이끈다고 생각했는데 이선경 지사의 동생인 이용성 선생이 이선경 지사와 큰 누나 이현경 지사 등을 소개하며, 산루리의 이병억, 김노적, 박선태, 김장성, 차계영 지사 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행궁동과 공방거리, 문화재단을 오가며 진행되는데, 거리에서 만세도 부르고 인상 깊은 행사였다.

 

문화도시 수원은 박물관의 도시이기도 하다. 정조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농업의 중심지였던 역사적 사실로 농촌진흥청이 위치하였던 서둔동에 한국농업박물관이 건립되어 올해 개관하였다. 그리고 수원시 3대 박물관으로 수원박물관, 종로에 위치한 수원 화성박물관, 광교에 특화된 수원 광교박물관이다. 이밖에 우리나라 지리정보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박물관과 고지도로 특화된 경희대 박물관이 있다. 이러한 박물관을 모두 다녀 봤고 이중 광교박물관, 수원박물관, 화성박물관을 소개한다.

광교박물관은 광교라는 지명유래와 광교의 중심된 청송 심씨, 안동 김씨 등 동족촌과 특히 세종의 국구로 비운의 인물이 된 심온 선생의 유적이 대표적이다. 다만 심온 선생 묘는 태종의 왕자 혜령군 묘와 달리 참배를 할 수 없어 너무 아쉽다. 조상의 음덕은 가리고 나눠서 구분하는 것이 아닌데 요즘 문중들의 작태를 보면 안타깝다.

수원박물관은 수원 이야기의 산실이다. 수원을 토성으로 번성한 최씨 (수원, 수성, 동본 이성) , 백씨 이야기, 그중 수원의 인물로 전통시대부터 널리 알려진 수원 최씨 비조 효자 최루백이다(삼강행실도 전함). 최루백은 부인 염경애와의 사랑으로도 유명한데 이러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한국서예박물관이 함께 있어 우리나라 서예에 대한 기본 적인 지식과 다양한 서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화성박물관은 새로운 수원에 대한 이야기의 중심이다. 고래의 수원이 아닌 정조가 현륭원을 옮기고 새롭게 건설한 화성 건설과 시작된 역사가 중심이다. 특히 정조의 이름이 '이산'이 아닌 '이성'으로 개성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도 야행에서 본 우리나라 최초의 농업인협동조합이 고색동에 시작된 사실과 천주교 박해 등 화성의 시구문이 된 동남암문과 옥사의 위치(통닭, 가구거리 인근)를 화성전도와 화성도를 찾아 확인한 사실, 내가 사는 매교 일대, 관심사인 대황교 일대(수원박물관 화성도 일부분), 괴목정교 표석(수원박물관 야외 전시)와 화소 표석(화성박물관 야외 전시) 등 여러 가지다.

 

 

 

수원화성박물관

황금갑옷을 입은 정조

정조는 선왕 영조와 마찬가지로 많은 행차를 했으며 행차가 지나갔던 지역의 백성들은 만나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는 백성들과 직접 대면하여 사회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의도와 더불어 장엄한 행차를 통해 국왕의 위엄을 알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정조의 행차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1795년 윤2일의 수원행차였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한 수원행차는 78일간의 일정으로 약 6,300여명이 동원된 대규모 행사였다. 군복인 융복을 입고 수원으로 행차하던 정조는 화성에 입성하기 전에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갑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는 수원화성의 완공(1796)을 앞두고 왕조의 중흥과 그 권위를 통하여 관료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애민정신의 실천을 통해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어 왕권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자 함이었다.

행렬 앞에 세우는 대장기 ()’과 용이 그려진 대형 깃발 용기(龍旗)’ 역시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