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우리땅 밟기 광주

달이선생 2023. 9. 5. 20:31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하고 하고 하는 속에 깨닫는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 사는 곳을 걸어가다 보면 미처 알지 못하였으나 알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고 보면서 알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옛 선인들이 먼 길을 나서게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늦깎이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어 순천과 광주로 길을 잡았다. 순천만 습지를 통한 환경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광주는 처참한 1980년 5월의 사건으로 어쩔 수 없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민주적 가치로 중요하다.

그래서 떠난다. 순천으로 광주로

‘과아앙~주’일까 ‘광주’일까 유난히도 이곳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중 하나이다. ‘광주’라고 늘려 말하는 광주는 경기도 광주라고

1980년 5월은 유난히도 이곳을 아프게 하고 시험하게 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배우고 있다. 20여 년 전에 찾은 광주는 회색빛의 낙후하고 왠지 모를 침울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망월동 묘지며, 전남대며 금남로며 전남도청을 찾았을 때도, 광주를 벗어나 전라도 지역을 보면서도 참 낙후하고 어두웠다.

빛고을 광주라더니 광주가 밝다. 아무래도 2000년대 들어 광주비엔날레 등 문화로 풍요로운 광주를 만들어서이지 싶다. 518의 상징 구 전남도청도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바뀐지 오래다. 게다가 금남로변에 헬기사격으로 유명한 전일빌딩이며 2011년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꾸며진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이 자리하여 광주가 온몸으로 떠안은 민주화의 역사가 생생히 전해져 온다.

광주시립묘지 내 사적으로 지정된 3묘원 ‘518 구 묘지’에 찾아 생전 ‘29만원’ 발언으로 유명하신 그분의 존함을 사뿐히 즈려밟고 올라선 묘역에 울컥한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묘는 농민운동가 백남기 씨이다. 전남 보성 웅치면장으로 그 전에 경찰 경감을 했던 아버지 백춘선과는 다른 길을 갔던 그이다.

묘원은 만으로 10대에 불과했던 시절 동행한 친구와 앳된 사진으로 기억에 선명한데 어느덧 새치가 자연스런 중년이 되어 다시 선다. 나는 생각한다. 저들과 같은 시간에 저들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의 그늘을 생각하고 그들의 피와 땀을 기억한다.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

-류동운-

 

나보다도 젊디젊은 류동운 열사에게 인사를 고하고 걸어 나왔다. 그리고 광주의 한복판 금남로를 걸으며 5.18 당시 헬기사격으로 피탄된 전일빌딩을 보고 기록관을 찾았다. 그렇게 광주를 걸었다.

2023.8.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