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이야기

창문국민학교 반공교육의 유산

달이선생 2022. 5. 28. 10:57

2022년 5월 27일 화성시 새솔동과 가까운 옛 창문초등학교의 창문아트센터를 찾았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큰애의 참관수업으로 우연하게 찾은 곳인데 잘 보니 폐교를 활용한 나름 재생의 현장이었다.

한 때 폐교가 늘어나면서 폐교를 이용하여 다양한 사업이 펼쳐졌는데, 이곳 창문초등학교는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아트센터로 탈바꿈했다.

창문초등학교는 2000년 들어 학생 수 감소에 따라 남양초등학교와 통폐합이 되면서 문을 닫았다. 그러나 창문초등학교의 자취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약속
20세기의 끝자락에서
새천년의 주인공이 될 
우리들의 꿈을 이곳에 심었습니다.
마을을 열어 멀리 보고 생각을 펼쳐
뜻을 세워 힘차게 뛰면서 
꿈을 이루어 2020년 8월 15일 10시
다시 만납시다.
1999. 11. 20.
창문초등학교장 이종훈

학교 구령대 위 현관문 왼편에 서있는 표석의 내용이다.

학교가 문을 닫기 1년 전에 세운 것으로 20년 후를 기약하는 내용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학교 폐교 당시의 이 지역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을테지만 지금은 새솔동이라는 신도시와 비봉습지공원 등이 위치하며 창문초등학교의 폐교가 주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많은 학교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던 그 시절 그래도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을테고 또 그러한 움직임은 곳곳에 있었다. 남한산성 산성위 학교도 그렇게 회생하여 지금은 공교육이지만 자유로운 교육과정 운영을 통한 특화된 대표 초등학교가 된지 오래다. 그런데 화성시의 여러 학교들은 존속보다는 폐교가 우선한듯 하다. 장안면 장안초등학교 수촌분교가 그랬다.

 

그리고 눈길이 간 것은 지금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린 반공 교육의 전유물들이다. 바로 이충무공상, 이승복상, 국민교육헌장표석, 세종대왕상 등 반공산주의는 체제 경쟁속에서 북한 공산주의에 맞서 남한 자본주의의 우월을 위해 우리 역사에서 빛나는 민족중흥의 대표적 화신이 반공의 표상을 제시되는데 바로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이 그 주인공이다. 이러한 가치를 교육헌장이라는 미명 아래 조형물로 만든 것은 국민교육헌장이었다. 또한 이승복은 남한 침투 무장간첩(공비)에 의해 희생된 아이로 학교 공간에서 또래를 통한 좋은 본보기가 된 사례였다.

이곳 창문에는 세종대왕상은 없다. 원래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특이하게도 여느 국민학교에서 보던 모습과 달리

진시황의 토용처럼 색칠이 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원래는 내가 알던 검청색 동상색인데 나중에

아트센터가 되면서 색감이 더해진 것 같다. 이승복상의 칠이 벗겨지는 것을 보니 말이다.

이들 반공신기 4인방 외에도 90년대 독서운동 바람이 불면서 학교에 독서상 세우기가 한창이었는데 이때 세워진 독서하는 소녀상도 색감이 칠해져 한쪽에 서있다. 이밖에 단군상 세우기 운동이 한 때 이루어져 단군상도 있는 학교가 있는데 창문초등학교는 너무 빨리 폐교되면서 단군상은 세워지지 않은 거 같다.

지금은 초등학교가 자연스럽지만 나는 국민학교를 나온 사람이다. 초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국민학교가 역사의 뒤안길로 지고 국민학교라는 명칭도 생소한 지금 예전 반공교육을 생각한다.

도시보다 열악한 농촌 국민학교는 과거 지역 중요 행사의 장이자 주민들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시골장 못지 않게 중요한 곳이 국민학교였다. 영화 ‘선생 김봉두’를 보면 마을 사람들과 운동회며 소풍이며 함께하는데 이날은 일종의‘머슴날’ 같이 농번기가 지나고 한바탕 놀고 쉬는 날이었다. 학교도 사람들도 그날만은 일손을 내려놓고 즐겼다. 가을 운동회날 작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동네마다 차양을 치고 큰 솥에 육개장 등을 끓여 김이 풀풀나던 기억이 선하다.

다시 돌아와서 당시 국민학교는 박정희 정권을 시작으로 반공을 국시로 반공산주의 이데올로기 교육을 실천한 첨병이었다. 학교에서는 중정, 안기부로 불리던 지금의 국정원에서 전향자나 탈북자를 학교로 보내어 강연을 하거나 교내와 단위를 올려가며 반공을 주제로 한 포스터 그리기..

그 당시는 우리는 반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빨갱이를 외쳤고 북한사람은 빨간 사람, 김일성은 돼지, 인민군은 늑대로 생각하며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케이블 방송에 유튜브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한 프로그램 시청이 가능하지만 그 때는 산과 들만이 놀이터였다. 그러니 학교 교실을 개조한 강당에서 보여주는 똘이장군 반공만화영화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이승복 반공영화의 시청은 큰 재미였다.

데땅트라고 하여 구소련체제가 무너지자 영원한 적이라고 생각한 중국과도 수교하는 사이 완고했던 학교는 변했다. 더이상 반공교육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니 반공교육은 나에겐 성공적이지 않은 거 같다. 사실 몸소 체득하면서 느낀 역사의 변화에서 이데올로기적 반공은 더이상 내게 중요한 가치는 아닌 과거 이상이자 실패한, 그리고 영원히 이루기 어려운 인류의 공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