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
2019. 3. 3
농촌진흥청이 위치했던 서호 서쪽 구릉은 여기산으로 이곳은 청동기 원삼국기의 대단위 생활유적(집터, 부뚜막) 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한국 농업사의 큰 스승인 우장춘 박사와 농업진흥청 초대 청장 정남규 박사, 그리고 배고픔에서 해방시킨 벼의 혁명 '통일벼'의 아버지 김인환 박사의 묘가 있다. 입산이 통제되는 곳이라 쉽게 찾을 수는 없는 곳으로 입산금지 푯말이 서있는 초입에서 경사로를 올라가면 먼저 정면으로 우장춘 박사묘가 나오고 무덤 좌측 구릉에 김인환 박사 묘가 연이어 있다. 여기를 지나 올라온 만큼 더 가면 정상부에 정남규 박사의 묘가 자리한다.
'씨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져 있는 우장춘 박사, 실제 우리가 더 그를 가까이 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배추, 속이 꽉 들어찬 배추 속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배추를 만든 사람이 우장춘이다. 원래 우리 배추는 무청보다 잎이 넓은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랬던 배추를 양배추처럼 속이 꽉찬 원통형의 배추를 만든 것이다. 배추를 보면서, 김치를 보면서 그의 노고를 떠올려 보자
우장춘 박사, 그는 참 기구한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을미사변(1895) 때 훈련대를 이끌고 중전 민씨를 제거하는 데 일제 측에 가담하고 이후 일본에 망명하였으나 결국 조선에서 보낸 자객에게 목숨을 잃은 우범선(禹範善, 1857-1903)이다. 개화파이자 신문물에 눈뜬 지식인인 그의 선택은 애국이었을지 모르나 결과는 망국과 불충이었다. 역적이 된 그와 달리 아들 우장춘은 해방후 전쟁과 가난에 찌든 한국인에게 농업의 희망을 안겨준 선각자이자 은인으로 애국자였다.
일제가 수탈을 위해 만든 권업모범장이 해방 후 농사원으로 개칭되었을 때, 우장춘 박사는 이곳에서 원예시험장장을 맡아 헌신적인 농업연구를 하였다. 결국 생애 마지막을 한국에서 마쳤고, 그의 유해를 이곳에 묻었다. 우장춘 박사의 질곡 많은 생애가 이곳 근현대 농업의 산실 농촌진흥청과 매우 닮아있다. 그의 선택과 헌신에 감사한다.
우장춘박사묘
1896년 4월 8일 망명정객 우범선공의 맏아들로 일본에서 출생
1959년 8월 10일 서울에서 62세로 별세하다
불우와 고난 속에 진리를 토파내어
종자합성 새 학설을 세계에 외칠 적에
잠잠턴 학문의 바다 물결 한 번 치니라
온갖 채소종자 우리 힘으로 길러 내어
겨레를 위하시니 그 공로 얼마던고
빛나는 문화포장을 웃고 받고 가니라
흙에서 살던 인생 흙으로 돌아가매
그 정신 뿌리되어 싹 트고 가지 뻗어
이 나라 과학의 동산에 백화만발하리라
1960년 4월 6일 이우상(?)은 글을
짓고 김충현은 제자하고 장남 원춘은
비명을 쓰고 윤효중은 설계 및 조작하
고 우장춘박사 장의위원회에서 세우다
- 우장춘 박사 묘비에서 -
동호 정남규박사지묘
서기1918년4월 25일출생
서길1971년12월22일서거
조국광복 직후 다난하던 시기로부터
농업교육 농업행정 농업협동조합운동에
한결같은 성실과 슬기로 심혈 기울여
평생을 이 나라 농촌진흥에 이바지하다
글 유달영
글씨 정균희
서기1972년 10월 친지 제자 유족들이 세우다
-정남규 박사묘비에서-
답사경로(이 글의 장소 굵은 글씨)
옛 농촌진흥청(국립식략과학원 중부작물부) - 여기산 우장춘 박사묘, 김인환 박사묘(중턱), 정남규 박사묘(정상부) - 서호 - 축만제 표석 - 항미정 - 서호 남쪽 서호천길(삼남길) - 앙카라공원 - 서울 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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