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과거의 그늘과 현재의 연해주2(블라디보스토크 4)

달이선생 2010. 6. 23. 08:00

블라디보스토크(동방을 정복하라) 4

  

  천혜의 요새 부동항 금각만

  러시아가 이곳을 거점으로 동쪽으로 남으로 진출하면서 유럽에서 북아메리카의 알레스카까지 거대한 영토를 점유하였다. 현재는 알레스카를 미국에 팔아 아메리카에 이르지는 않지만 현대 많은 나라중 가장 영토가 광활하다.

  2010년 6월 23일 수요일 우수리스크에 이어 블라디보스토크의 답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독수리 언덕 키릴형제 동상을 통해 러시아 슬라브족은 이들 형제를 기념하며 자기들이 처음 발디딘 곳으로 기념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 유럽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아시아지역의 톡특한 지역이지만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여진족이 무리를 지어 수렵, 채집을 하던 곳이고, 구한말 대기근과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민족이 이주하여 터전으로 삼았던 곳이다. 더 이전에는 고조선에 이은 고대 한민족 국가의 영역이자 활동무대였는데, 지금은 그저 과거 이야기만 되고 있다.

  그리고 구한말 블라디보스토크에 한민족 거류지인 개척리, 이어 신한촌을 건설하여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표적인 도시가 되었고 나라를 잃고는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이자 거점이었다. 21세기 남북한이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고자 손을 맞잡았다. 과거에 그랬듯이 이제는 정치적 금단을 넘어 자유롭게 연해주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평화의 번영에 시대가 열리기 소망한다.



연해주 탐방기 / 2010년 연해주에서 일기형식을 남긴 글


  연해주는 뱀이 없다. 비가 세차게 내리지 않는다. 토양이 검고 돌이 없다. 기름지다. 모기가 많다. 마치 하루살이가 떼를 이루듯

  대중교통은 승합차로 이루어지는 봉고버스가 있다. 우스리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200루블 거리가 120km 1시간 반 거리이다. 차는 막히지 않으나 길이 비포장도 있어 속력을 일정하게 내기 어렵다. 기사들의 운전실력이 뛰어나다.

  전철을 타면 95루블이고 2시간이 소요된다. 화장실은 10루블을 내야하는 유료다.

  블라디보스톡 최초 한인 이주지 개척리(거리), 신한촌, 젊은이의 거리 아르바트 거리

  생필품 가게 마거진


블라디보스톡 기행 2010. 6. 23(수)

  우스리스크역에서 전철을 타고 2시간 가량 걸려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톡의 첫인상은 부산과 매우 닮았다. 역에서 내려 지나는데 마치 중앙정부청사와 같은 인상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블라디보스톡 주정부 청사이다. 청사를 지나 해안에 갔다. 가는 길목이 100년 전 초기 한인이주자들이 정착한 개척리라는 거리였고 이곳 물이 좋아 러시아 정부는 한인들을 언덕넘어 새로운 한인촌으로 이주 시켰고 그래서 신한촌이라고 한다.

  블라디보스톡 해변에서 케밥과 샤슬릭을 점심을 때우고 해변의 여유를 가진 다음 젊은이의 거리인 아르바트 거리르 지나 연해주 주립 박물관인 ‘아르세니예프 박물관’에 갔다. 고대 연해주의 역사와 토착 나나이족, 제정러시아 탐험가이자 개척가인 아르세니예프가 직접 수집하여 모은 역사문화생태 유물이 전시되고 있고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고대 한반도와 만주를 잇는 우리 조상들의 유물이었다. 특히 발해의 유물을 근거리에서 이렇게 발해의 옛 터전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흥분된다. 발해유물에 이어 이곳 토착인 여진, 후에 금나라를 건국한 이들의 유물도 있었는데 역시 발해, 더 나아가 고구려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미친 영향을 생각하게 해준다. 다수의 유물이 유사했다.

박물관을 나와 주정부를 지나 독수리 전망대에 갔다. 전망대를 오르는 길은 위치 에너지를 이용한 수직 궤도차가 운행되고 있어서 명물이 되고 있다. 마치 서울 남산에 케이블카처럼..

   독수리 전망대는 극동러시아의 부동항이라는 금각만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무소의 뿔처럼 ㄱ자를 연상케 하는 금각만은 겨울에 먼 바다는 얼지만 이 만 안쪽은 살얼음만이 얼 정도로 훌륭한 정박지이다. 실제 보기에도 육지사이 좁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떨어지지 않은 면적의 금각만은 푸근한 천혜 방파제로 둘러진 안전한 만으로 보이고 그 모습 역시 매우 아름답사 만의 크기 상당히 커서 한눈에 다 조망되지 않는다. 탁트인 이곳을 제정러시아가 왜 그토록 집착을 했는지 알 거 같다. 문외한이 나도 알겠으니..

   전망대의 중심에는 러시아 전통문자 키릴문자를 전한 키릴형제의 동상과 러시아정교회의 십자가가 서있다. 이곳이 제정러시아의 새로운 땅, 우리가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기념물이다. 러시아 민족의 정서는 유럽에 처한 사람이면서도 동양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데 아마도 굴곡 많았던 그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을 거 같다.

   전철이 일찍 끊겨 철도를 이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철도도 끊기고 버스로 이동하자고 하여 버스터미널로 갔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버스가 아닌 승합차로 이루어진 터미널이었다. 마치 우리 콜벤이나 렌트카와 비슷했는데 요금은 버스요금이다. 러시아에서 철도를 이용하는데는 어려움이 많다. 특히 러시아 철도는 여권 심사도 오래 걸리고 표를 사는데도 한번에 6명이 넘지 못해서 불편하다.

   1시간 반에 걸쳐 10시경 우스리스크에 도착하여 아리랑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각 중국식 볶음 요리와 된장찌개로 배를 채워 좋았는데 옆 쪽에 늦은시간이라 파티 등이 이루어져 너무 시끄럽고 불쾌했다. 중국식 볶음 요리로 생각했던 음식이 나중에 들었는데 한식이라고 한다. 연해주와 접한 만주일대에 변형된 한식 음식이 조선족 동포에서 만들어지는데 그 영향인듯 싶다.


2010. 6. 24(목)

   로지나마을 근처에 동평이 임대한 호수가 있다. 오전에 동평 연해주 사무국 사무국장 김승력 국장님을 모시고 연해주의 이모저모를 들었다. 전날 블라디보스톡 필드워크로 많이 피곤해서 역사 전공이라 매우 흥미진진했다.

   샤슬릭 파티 로지나 게스트하우스 지마와 스삐에타 할머니 , 안내 서강대 07학번 채연 자원활동가, 유승호 간사, 리키타 아저씨, 깔리아 마마, 스캇이 구운 샤슬릭, 주인영 선생님

발치카 씸을 마시고 잠


2010. 6. 25(금)

  늦은 잠자리로 10시 반이 넘어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려 우리가 묵은 방을 치웠다. 오늘 우리가 가는 줄을 아는지 스비에따가 너무 잘 따른다. 차가 오고 아이들과 리키타 아저씨를 배웅받으며 가는데 너무 섭섭하다.

   차를 타고 졸다 깨다를 하며 4시간을 달려 연해주 중부에서 두만간 방면 남부항 자루비노로 갔다. 비포장길이라 그 먼지가 눈앞을 흐뿌옇게 가린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 한반도에서는 그 자취를 감춘 호랑이, 표범이 사는 곳이다. 그 원시림을 지나 자루비노 항구에 다다르니 너른 야산의 초지와 맑은 동해의 바닷물이 천혜의 자연조건 임을 알 수 있다. 그 옛날 발해의 사람들이 신라로 일본으로 향하던 뱃머리가 이곳에서도 나가지 않았을까 출국을 위해 동춘호 승선을 하고자 여권을 모아 확인하고 개인당 60루블을 지불하여 출국심사대 앞까지 갔다. 앞서 온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또는 고스톱까지

   중국을 가려다 회항하는 단체 손님으로 오루 보딩이 상당히 느려져 꼴찌로 출국수속을 밟았다. 뒤늦은 감기로 저녁을 먹고 발치카를 마시고 잠이 든다.

   “러시아 들어가기도 힘들고 나오기도 힘든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