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동방을 정복하라) 1
거창한 이름 블라디보스토크 그러나 실상은 동북방의 값비싼 담비가죽을 차지하고자 혈안이 되었던 러시아 사람들의 종착지라는 사실을 알까? 그리고 이곳은 망국의 한이 점철되던 19세기부터 우리 민족이 넘어와 정착하였던 우리의 터전(해삼위)이다. 지금도 많은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를 떠나 다시금 이주를 하고 있다. 더욱이 러시아 연해주 연방은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경제와 문화적 협력을 바라는 이곳, 이곳은 아주 오래전 동이족의 고토이자, 고조선, 부여, 옥저, 고구려, 발해로 이어졌던 한민족의 활동지, 삶과 역사의 터전이다. 그곳 연해주, 그 심장부인 블라디보스톡을 간다.
우수리스크역에서 전철을 타고 2시간 가량 걸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인상은 부산과 매우 닮음을 느꼈다. 역에서 처음 내려 맞이한 것은 러시아혁명의 영웅 레린의 동상이다. 지금도 러시아인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인 레닌, 세계 역사에서는 물론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가 끼친 영향은 정말 대단하였다. 그 레닌이 우릴 맞아준다.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시작이자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역을 나와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블라디보스토크주정부 청사를 지나 블라디해안에 이다. 가는 그 길목이 100여년전 초기 한인 이주자들이 정착한 개척리라는 거리였다. 러시아정부는 한인들이 개척한 개척리는 목이 좋았다. 따라서 한인들을 언덕넘어로 이주시켜버렸다. 바로 신한촌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고려인동포들은 이때부터 러시아의 방황에 역사가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기록에서 확인하듯 한인들의 뛰어난 적응력과 농업적 능력은 이미 러시아도 인식하고 있었고 이들에 대한 통제로 농업경영의 혁신을 모색하기도 하였는데 실제로 1937년에 단행된 강제이주 이면에는 표면적 이유인 2차대전 시 한인들이 일제에 동조할지 모르다는 의도가 아닌 한인의 농업적 능력을 통하여 당시 소련에서도 황무지나 다름없던 중앙아시아지역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고자 한인들을 대대적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최근에 러시아 공식기록으로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블라디해변은 휴양지로 작은 해변에 맑고 푸른 바닷물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주변에는 거리음식들이 즐비한다. 우리도 양고기와 쇠고기를 쇳대에 꽂아 바베큐를 해서 밀가루를 얇게 펴서 구운 마치 우리나라 빈대떡 같은 것에 갖은 채소와 소를 한 케밥과 양고기 쇠고기 등을 양파와 요구르트, 향신료, 소금 등으로 간을 해서 구운 샤슬릭으로 끼니를 때웠다.
연해주의 광대한 벌판에서 며칠을 보내던 우리가 동해의 파란 물결을 보면서 잠시 여유를 가졌다.
서울의 명동을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마치 명동처럼 젊은이가 넘쳐나고 패션의 중심 거리인 아르바트 거리를 지나서 연해주 주립 박물관인 '아르세니예프 박물관'에 갔다. 아르세니예프는 러시아 연해주를 탐험한 사람으로 그가 수집한 막대한 양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 북부지역을 경유하며 그곳의 원주민인 여진족과 문화와 역사를 이뤄갔던 유물이 즐비하다.
박물관을 나와 들린 곳은 블라디보스톡항과 일대인 금각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독수리 언덕이다. 그 정상에는 전망대와 러시아 문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기릴형제의 동상이 서있다. 값비싼 담비가죽을 손에 넣고자 동으로 동으로 나아갔던 슬라브 러시아 사람들이 결국엔 이곳 연해주를 터전으로 삼아 오늘을 영위하고 있다. 남북한의 통일은 정치적 통일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과거 우리 역사와 민족이 현재의 정치적 경계를 넘어서서 동북아지역을 무대로 역사와 문화를 일궜던 것을 생각하면 하루 속히 남북한이 평화적 교루와 경제적 개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박물관에서 본 일본군이 1918년 러시아 적군을 토벌하고자 전범기(욱일기)를 앞세우고 일본 해병이 진주하는 사진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지만 되풀이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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