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안동 퇴계 유적 답사(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달이선생 2018. 11. 5. 12:30

안동 퇴계(退溪) 유적 답사

  2018년 11월 5일부터 6일까지 1박 2일에 걸쳐 안동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 진행하는 선비문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퇴계 선생의 유적이 남아있는 도산지역을 수련처로 삼아서 과정은 크게 강의와 퇴계 유적 답사로 진행되었다. 지난번 답사에서 도산서원만 급히 찾아보고 가서 아쉬움이 컸던 터라 이번 답사에서 퇴계 선생의 유적 전반을 살펴볼 수 있어서 기대감과 설레임이 컸다.

   피휘(避諱)라는 것이 있다. 관습에 따라 국왕이나 성현 또는 죽은 사람이나 조상에 대해서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곳에 와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이 퇴계 선생에 대한 존경에 의미로 피휘하는 것이었다.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을 기리며, 퇴계 선생이 자리잡고 후학을 길렀던 상계마을의 계상서당과 하계마을의 퇴계 묘와 후손들의 유적(안동댐 수몰 전 100여 호 남짓의 마을로 조선 문과 15명, 독립운동가 공훈자 25명 배출), 그리고 계상서당을 나와 도산서원에 이르기까지 이곳 도산지역 전역이 퇴계의 산실이다. 특히 상계의 종택은 퇴계의 업적을 따라 정자인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 주자의 추월조한수[秋月照寒水]의 말로 천년을 내려온 마음이 가을 달빛에 비치는 한수와 같다는 의미, 옛 성인들의 마음을 이른다) 내의 현판에서 '도학연원방(道學淵源坊, 도학이 연원한 집)',   '산남궐리(山南闕里, 궐리는 공자의 고향으로 이곳 산남이 궐리이다.)', '해동고정(海東考亭, 주자가 강학을 하던 고정과 같다하여 이곳이 해동의 고정이라) , '이운재(理韻齋, 공자의 도학을 받아들여 퇴계가 완성한 이 여운을 기리는 집)' '완패당(玩佩堂, 마음에 간직한 패물이라는 뜻으로 퇴계가 연구 발전시킨 道學을 누가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것)등 조선성리학의 뿌리라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1박 2일 동안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인간성을 듣고(김병일 이사장), 안동지역 유교문화에 대해서 살펴봤다(김종길 원장, 학봉 종손). 중요 체험으로 도산서원 퇴계 위패를 모신 상덕사((尙德祠)에서 알묘례(謁廟禮)를 행하고  명예 도산서원 제유사(齊有司)로 임명되었다.  






 











  선비문화수련원에서 동북쪽으로 보면 청량산 육륙봉이 멀리나마 보이고 그 사이를 연결한 연륙교도 희미하게 나마 보인다. 이 청량산은 경북 봉화의 수려한 명승지다. 이러한 청량산에서 어린시절 퇴계는 공부에 매진했었고, 그러한 인연으로 청량산을 늘 이상향으로 삼았다. 퇴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평시조가 유명하다.


淸凉山(청량산) 육륙봉(六六峰)을 아나니 나와 白鷗(백구)

白鷗야 헌사하랴 못 미들손 桃花(도화)로다

桃花(도화)야 떠나지 마라 漁舟子(오주자) 알가 하노라.


청량산 열두 봉우리를 아는 것은 나와 흰 갈매기뿐이다.

흰 갈매기야 시끄럽게 떠들 리가(그래서 다른 사람이 이곳을 알게 할 리가)있겠느냐만. 못 믿겠는 것은 복숭아꽃이다.

복숭아꽃아. (강물에) 떠서 아래로 흘러가지 말아다오, 어부가 (너를 보고 이곳을) 알까 (걱정)하노라.



  낙동강 강가의 청량산 삼거리이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청량교를 지나면 퇴계가 꿈꾸던 이상향인 청량산을 오를 수 있다. 예년과 다르게 강수량이 많아서 없던 폭포가 만들어져 수려한 경치를 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