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 3

시흥시(始興市)의 한국양명학(韓國陽明學) 연구(硏究)

시흥시(始興市)의 한국양명학(韓國陽明學) 연구(硏究)-장유(張維)와 정제두(鄭齊斗)를 중심으로-       1. 들어가기    시흥시(始興市)는 전근대시대 인천(仁川)과 안산(安山)을 경유한 지역으로, 이지역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이 글에서 주목하고 있는 한국양명학(韓國陽明學)의 장유(張維, 1587-1638)와 정제두(鄭齊斗, 1649-1736)는 당시 안산에 지역적 연고를 맺고 활동하였다. 현재 이들의 연고지는 시흥시이다.  양명학은 주자학(朱子學=程朱學)과 함께 신유가 철학의 양대 주류를 형성했다. 양명학은 심학(心學) 혹은 육왕학(陸王學)이라고도 한다. 정주학 특히 주희(朱熹, 1130-1200)의 학설을 부정하던 육구연(陸九淵, 1139-1192)의 이론을 왕수인(王守仁, 1472-1..

시흥 추곡(가래울) 정제두 선생 유허지

한국양명학의 대종사로 정제두는 그간 강화(江華)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었다. 그가 강화로 이전하기 전, 시흥시 화정동 추곡(楸谷=가래울)에서 20년간 살았고, 그의 호는 ‘추곡’이다.     추곡(楸谷)의 학문에서 만약 범위의 넓은 곳을 가지고 논한다면 혹 옛사람에게는 조금은 손색이 있으나 밝게 나아가고 스스로 얻으려던(自得) 지취(旨趣)에서는 이 세상에서 뒤따라갈 이가 거의 없을 것이라.(楸谷之學 若論廣闊處 或少遜古人 而明造自得之趣 當世無幾及之者-『하곡집』,「연보」, 숙종 22년 병자)   정제두와 교분이 두터웠던 친구 민이승(閔以升, 1649-1698)이 정제두를 ‘추곡’으로 부르고 있다. 민이승은 안산시기에 양명학에 심취해 있던 정제두를 바로 잡으려 한 인물이다. 추곡시기 민이승은 자신의 둘째아들 민경..

카테고리 없음 2018.08.23

정제두 유허비(시흥시 화정동 가래울[추곡楸谷])

추곡 정제두 선생 유허비 위당 정인보는 정제두(鄭齊斗,1649~1736)를 일컬어 "조선 양명학의 대종사"라고 하였다.정제두는 현종대 우의정을 지낸 도촌 정유성의 손자로 조선 사림의 스승 포은 정몽주의 후손이다.이곳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은 한자로 추곡(楸谷)이며, 1914년 군면통폐합으로 안산군이 없어 질 때까지 안산군에 속하였다.당시에 정제두 선생이 살면서 이곳 지명을 따서 추곡선생으로 불렸다. 입신한 아우 정제태와 달리 과거를 그만두고 여기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이 시기 박세채와 윤증을 사사하고 친구인 민이승, 박심, 최석정 등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양명학에 대한 성취를 이루었다.정제두 선생이 한양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것은 바로 이곳에 6대조 정광윤 등 조상의 묘가 있어서이다.할아버지 도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