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로 6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정로, 김취로, 김약로, 김상로 선생 묘 등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정로, 김취로, 김약로, 김상로 선생 묘 등(대제학 김유 묘역)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왕림은 정국공신 김우증이 사패하여 청풍김씨 판서공파의 오랜 선영이자 세거지이다. 이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영조대 영의정을 역임한 김치인은 '청풍김시묘문비'를 세웠다. 그곳에 김치인에게는 재종조부가 되는 대제학 김유 묘역이 있다. 이러한 김유 묘역에 2017년 6월 13일부터 8월 13일까지 김유 묘 단장 및 묘하에 후손 이장이 이루어졌다. 과천에 있던 김약로의 묘가 오래되면서 선산이 타인에게 넘어갔고 이를 소유한 사람이 무덤이장 요청하고 그 비용을 충당하기로 하면서 대역사가 이루어진다. 김약로의 묘는 물론 김유의 장자 김정로 무덤과 아울러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 쌍봉산록에 있던 차남 김취..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유 선생 묘 및 신도비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유 선생 묘 및 신도비(김유 선생 묘역)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의 왕림마을은 숙,영,정조시기 세도가였던 청풍김씨 판서공파의 사패지로 입향조인 정국공신 김우증과 후손의 묘역과 세거지가 있는 곳이다. 2020년 1월 6일 월요일 눈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답사를 하였다. 1번 국도를 따라 의왕시 고천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고천동주민센터를 지나 과천봉담간 고속도로 아래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것이 왕림마을 비석이고 그 뒷편으로 '청풍김씨묘문'이라고 쓴 비석이 나온다. 청풍김씨묘문비기문비 1751년 정조대 영의정을 역임한 김치인이 국서체인 한호의 석봉체를 집자하여 건립한 것으로 1991년 4월 세운 기문비(규택[奎澤] 지음)에 따르면 원래 동입구 복전동(卜前洞) 초입에 세웠는데,..

하계 김상로 선생 묘 옛터

하계 김상로 선생 묘 옛터(화성시 우정읍 조암리 쌍봉산 아래) 화성시 우정읍과 장안면은 예부터 하나의 역사와 사회경제적 공동체를 이루어온 곳이다. 마한 상외국, 백제 6포, 고려 쌍부현, 조선 쌍창과 삼괴칠면 등 수원시의 전근대 행정구역인 수주와 수원부에 속하여 독립적인 역사와 문화를 이룬 수원 남부지역의 중심된 곳이다, 이곳이 정식 역사기록으로서 흥미로운 사실을 전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이다. 지역의 자연지리적 특징인 두 언덕을 말하는 쌍부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역사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그 인물이 바로 청풍김씨 하계 김상로(하계 김상로(霞溪,金尙魯, 1702 ~ 1766년 12월 29일)이다. 김상로는 당대 노론의 영수이자 사도세자의 비행을 들어 영조가 사사하는데, 큰 역할을 하여 ..

삼괴와 김상로 이야기(문화의 뜰 86호, 화성문화원)

문화의 뜰(2019 가을.겨울, 86호. 화성문화원) 삼괴와 김상로 이야기 화성문화원에서 계간지 문화의 뜰 원고 청탁을 받고 부랴부랴 글을 준비해서 탈고하였다. 그 전부터 생각하던 고향 삼괴(화성시 우정, 장안면)의 지명유래, 그리고 영조대 영의정을 역임하고 정조로부터 역적의 나락을 떨어진 하계 김상로(하계 김상로(霞溪,金尙魯, 1702 ~ 1766년 12월 29일)에 대한 이야기를 써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된 것은 삼괴라는 지명이 삼정승에서 유래한다는 삼정승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상로이고 그 김상로의 실제 유적인 무덤이 옛 수원부 지역의 명승인 쌍봉산(쌍부산) 아래 위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고를 탈고하고 계간지가 발간되고 나서 김상로와 김취로의 묘가 이장된 사실을 알았다. 이장된 터..

쌍봉산록의 묻힌 김상로 역적인가? 1

역사는 승리자를 위한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풍 김씨 하계 김상로(霞溪,金尙魯, 1702 ~ 1766년 12월 29일)가 그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닌가 한다. 2012년 4월 5일 하계 김상로의 무덤이 우정읍 멱우리 벌판에 있다는 단서만 가지고 찾아나섰다. '쌍봉산근처'라는 단서를 가지고 찾아나선 길이다. 한참을 이리저리 다니다. 정오가 되어 쌍봉산 서편에 해가 걸렸을 때 오래된 묘역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학부 때부터 찾아다녔던 하계 김상로의 무덤.. 드디어 찾았다. 마음이 벅찼고 하계에 대한 예의로 절을 올렸다. 영조에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며 영의정까지 오른 당대 최고 권신이었던 김상로는 사도세자를 죽인 원수라는 굴레가 씌워져 정조가 즉위하면서 이미 작고한 그에게 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