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5일 귀래리 고두미 마을 단재 신채호 선생 묘 및 사당을 참배하고 단재기념관을 관람하였다.
기념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선생님과 도산 선생님 간의 편지로 형과 아우로 부르며 각별했던 것을 본 것이다. 하와이를 호로 삼아 누구보다 솔선하여 앞장서며, 겸손했던 도산 선생님이 단재 선생님과 매우 친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갑고 눈물겹다. 더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해서 대통령 이승만의 위임 통치 청원에 반대하며 최초로 탄핵가결을 주도한 선생이니만큼 그 업적과 친우들이 많았지만 그의 공로는 독립운동가 대통령 윤보선에 의해 추서되었다. 악연에 악수에 이승만과는 절대 함께 할 수 없었던 선생이다. 이렇게 반골기질인 선생이었으나 의외로 선생의 꼿꼿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차례로 고령신씨 단재 신채호, 경부 신백우, 예관 신규식으로 청원에서 같이 자랐다. 나이는 신규식이 한 살 위이고 신백우가 8살 아래다. 항렬상 가운데 신백우가 할아버지, 신규식이 아저씨다. 1919년 겨울 상해 어느 사진관에서 찍은 것이다.
신규식은 상해임시정부의 물리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 당대 상해 한인사회의 대부였다. 신해혁명을 이끈 손문, 진독수, 송교인, 서혈아, 호한민 등 중국혁명지도자들과 돈독한 친교를 맺었으며, 상해임정을 손문 호법정부가 인정케 한 인물이다. 대한제국 장교출신으로 한학과 중국어를 배우고 한양에서 금융업으로 큰돈을 벌어 다수가 만주와 연해주로 떠나갈때, 상해로 망명하여 손문을 만나 큰돈을 후원하여 프랑스 조계에 독립운동기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박달학원을 설립하여 인재를 키웠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몽양 여운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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