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2일 창녕 읍내를 답사하였다.
종묘사직은 한 국가의 열성조 즉 역대 국왕 등의 신위를 모신 왕조 사당인 종묘와 농본국가의 중요한 가치와 의미인 토지와 곡물신을 제사하는 사직단을 말한다. 따라서 조선의 한양 서울 사직동의 사직단이 경복궁 서쪽 인왕산 아래 조성되어 국가 정체를 이룬다. 조선의 지방수령은 왕을 대리하는 자리이므로 지방관아의 동쪽에도 지방 사직단이 조성되어 제사를 주관하였다. 그래서 전국에 200군현에 그 많던 사직단이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읍성과 마찬가지로 다 철거되어 보기 어려운데 창녕에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발굴하여 복원하였다.
이밖에 경주 석빙고와 유사한 석빙고(석빙고 앞 비문: 석빙고비 현감신후서등내영건)와, 역대 창녕 현감비군(공덕, 송덕비), 창녕객사 일부, 전국 군현에 흥선대원군이 외세에 맞서 자주적 투쟁을 고취하능 척화비(실물은 몇군데 없음) 등 조선시대 지방 행정에 관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일러 주는 유적이 즐비하다. 게다가 한국전쟁 당시 이곳 창녕은 낙동강 방어선의 일선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던 창녕지구 전적지로 유엔비가 서있는 동족상잔의 비극에 현장이다.
신라 진흥왕은 창녕 비화가야를 정복하고 순수비인 척경비를 세웠고 이후 합천일대와 합쳐 비사벌군을 설치하여신라 영토 임을 천명한 유산으로 창녕은 이로부터 빠르게 신라의 중요 지역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신라 문화의 중요한 부분인 불교 문화가 꽃을 피웠으니 그 대표적인 유적이 인양사조성비, 술정리 동 삼층석탑, 직교리 당간지주,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퇴천리 삼층석탑 등이다. 창녕 읍내 곳곳에 퍼져 있으나 2km내외로 인접하여 날씨 좋은날 걸으면 좋다.
사직단이 위치한 곳은 창녕 북동쪽 구릉으로 비화가야 고분군인 교동1지구에 속한다. 교동은 ‘교‘자에서 알수있듯 향교와 관련된 지명으로 보통 교동, 교리라고 하면 향교가 들어선 마을이다. 따라서 창녕향교 주위 구릉으로 대단위로 비화가야 고분군이 정상부에 펼쳐져있다. 창녕박물관쪽과 달리 이곳의 고분들은 봉토분은 무너지고 재건되지 않았으나 돌방과 돌덧널 흔적들이 즐비하다. 창녕 읍내 화왕산 가지능선들은 무수히 많은 비화가야의 고분들이 위치한 비화가야의 대릉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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