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2일 비화가야의 땅 창녕을 찾았다.
비화가야는 고대 국가로 발돋움 못하고 신라에 편입되어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 흔적은 영산 동리, 계성 고분군의 이른 시기에 조성된 고분들이 즐비하고 창녕읍내를 거점으로 중심 시기인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비화가야가 신라 진흥왕에 편입되고(신라진흥왕척경비:순수비) 이후 지배층의 무덤이 계속적으로 이곳 구릉에 조성되는데 그 부장품 중 신라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 확인 되므로 진흥왕 척경비에서 보이는 비화가야의 신라로의 편입과 그 지배층의 존속 등이 확인 되는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견이었다.
비화가야의 본거지 답게 화왕산 자락 가지능선으로 무수히 펼쳐진 비화가야의 고분들은 창녕이 가야연맹의 중요한 축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고분군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의 대릉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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