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성 2

강화 하곡(하일리) 정제두 유허지

상도면(上道面) 187. 하일동(霞逸洞) 하현(霞峴)의 서남쪽은 골짝마다 그윽한데(霞峴西南谷谷幽), 재상이 예로부터 이 산중에 머물고 있네(山中宰相古今留). 두 정승(정제두, 최규서)의 집터와 세 정승의 무덤(정유성, 정제두, 권개) 있어(二公宅址三公墓), 이곳을 강화도의 ʻ제일구(第一區)ʼ이라고 부른다네(云是江州第一區). 상도면(上道面)은 강화부 관아 남쪽 35리에 있다. 도촌 정유성(陶村 鄭維城)은 묘는 하일리(霞逸里)의 서쪽 산기슭에 있다. 정제두는 도촌의 손자이다. 집터가 여기에 있는데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고향에 은거하면서 도학을 온전히 갖추었으며 오조를 거쳐 국태로(國太老)의 학자라고 하였다. 또 하곡 선생이라고 불리었으며, 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

정제두 유허비(시흥시 화정동 가래울[추곡楸谷])

추곡 정제두 선생 유허비 위당 정인보는 정제두(鄭齊斗,1649~1736)를 일컬어 "조선 양명학의 대종사"라고 하였다.정제두는 현종대 우의정을 지낸 도촌 정유성의 손자로 조선 사림의 스승 포은 정몽주의 후손이다.이곳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은 한자로 추곡(楸谷)이며, 1914년 군면통폐합으로 안산군이 없어 질 때까지 안산군에 속하였다.당시에 정제두 선생이 살면서 이곳 지명을 따서 추곡선생으로 불렸다. 입신한 아우 정제태와 달리 과거를 그만두고 여기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이 시기 박세채와 윤증을 사사하고 친구인 민이승, 박심, 최석정 등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양명학에 대한 성취를 이루었다.정제두 선생이 한양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것은 바로 이곳에 6대조 정광윤 등 조상의 묘가 있어서이다.할아버지 도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