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명학의 대종사로 정제두는 그간 강화(江華)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었다. 그가 강화로 이전하기 전, 시흥시 화정동 추곡(楸谷=가래울)에서 20년간 살았고, 그의 호는 ‘추곡’이다. 추곡(楸谷)의 학문에서 만약 범위의 넓은 곳을 가지고 논한다면 혹 옛사람에게는 조금은 손색이 있으나 밝게 나아가고 스스로 얻으려던(自得) 지취(旨趣)에서는 이 세상에서 뒤따라갈 이가 거의 없을 것이라.(楸谷之學 若論廣闊處 或少遜古人 而明造自得之趣 當世無幾及之者-『하곡집』,「연보」, 숙종 22년 병자) 정제두와 교분이 두터웠던 친구 민이승(閔以升, 1649-1698)이 정제두를 ‘추곡’으로 부르고 있다. 민이승은 안산시기에 양명학에 심취해 있던 정제두를 바로 잡으려 한 인물이다. 추곡시기 민이승은 자신의 둘째아들 민경창(閔景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