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4

서대문 경교장

1945년 11월 4일 개인자격으로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정') 요인들이 귀국하였다. 8.15해방이 되고도 3달이 넘어 벌어진 일이다. 38선 이남의 어떠한 정부도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의 조치 이후 벌어진 우리 역사의 비극이었다. 이때 친일부역자로 임정의 후광으로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했던 금광업자 최창학이 자신의 별장 죽첨장을 임시정부 청사로 제공한다. 바로 임정 주석 김구 선생이 1949년 분단주의자 안두희의 총탄으로 서거하기까지 머물렀던 '서대문 경교장'이다.https://blog.naver.com/leelove97/223561419739 민족의 사랑 『백범일지(白凡逸志)』1949년 6월 26일 낮, 12시 36분. 경교장에서 여러 발의 총탄소리가 들린다. 향년..

민족의 사랑 『백범일지』

민족의 사랑 『백범일지(白凡逸志)』 1949년 6월 26일 낮, 12시 36분. 경교장에서 여러 발의 총탄소리가 들린다. 향년 74세,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가 쓰러졌다. 백범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보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백범 김구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정작 그를 저격했던 안두희 조차도 다른 이의 손에 죽는 날까지도 그날에 대해서 어떠한 진실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죽음과 함께 모든 진실을 가지고 침묵하여 버렸다. 김구 선생을 암살 했던 안두희가 당시 특무대장 김창룡(金昌龍, 1920-1956)과 가까웠고 그런 김창룡은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이승만의 신임은 두터웠다. 이승만을 위해서라면 김창룡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당..

만주에 산화한 안중근

만주에 산화한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러시아)지구군사령관 안중근(1879-1910)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崔在亨, 1858- 1920)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발행되는 '해조신문'에 실린 동의회 취지서로 안중근 의사가 최재형, 이범윤, 엄인섭 등과 동의회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하였음으로 말해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이토를 사살하고 러시아 검찰관 앞에서의 예비조사와 이후 관동도독부지방법원 원장 마나베(眞鎬十藏)의 일제법정에 선 안중근 의사는 당시 만국공법(국제법)에 의거하여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지구군사령관으로서 교전국 군인으로 대우 받길 밝혔다. 이는 단순한 살인 피고가 아닌 전쟁 포로로 대우 받아 현 이토 사살이 단순한 살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