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향토사학 2

시흥시(始興市)의 한국양명학(韓國陽明學) 연구(硏究)

시흥시(始興市)의 한국양명학(韓國陽明學) 연구(硏究)-장유(張維)와 정제두(鄭齊斗)를 중심으로-       1. 들어가기    시흥시(始興市)는 전근대시대 인천(仁川)과 안산(安山)을 경유한 지역으로, 이지역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이 글에서 주목하고 있는 한국양명학(韓國陽明學)의 장유(張維, 1587-1638)와 정제두(鄭齊斗, 1649-1736)는 당시 안산에 지역적 연고를 맺고 활동하였다. 현재 이들의 연고지는 시흥시이다.  양명학은 주자학(朱子學=程朱學)과 함께 신유가 철학의 양대 주류를 형성했다. 양명학은 심학(心學) 혹은 육왕학(陸王學)이라고도 한다. 정주학 특히 주희(朱熹, 1130-1200)의 학설을 부정하던 육구연(陸九淵, 1139-1192)의 이론을 왕수인(王守仁, 1472-1..

시흥군(始興群) 수암면(秀岩面) 3․1운동과 윤동욱(尹東旭)의 사상(思想)

시흥군(始興群) 수암면(秀岩面) 3․1운동과 윤동욱(尹東旭)의 사상(思想) 산현동 윤동욱 선생의 생가(손자 윤성준 가옥)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적인 독립만세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만세운동의 촉발은 일본제국주의의 불법적 침탈에 따른 것으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시작으로 1910년 한일병합으로 식민지배를 확정하였다. 따라서 일제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설치하고 헌병경찰제(憲兵警察制)를 통한 무단통치(武斷統治)를 실시하여 야만적인 탄압과 수탈을 자행한다. 3∙1운동은 바로 이러한 일제에 맞서 자발적이고 거국적으로 이루어진 민족적 저항이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각 지역의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전 계층이 일제에 맞서 항일만세운동을 일을 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