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진주성 만보 하나

달이선생 2024. 7. 30. 11:37

2024년 7월 27일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을 찾았다.

진주성은 진주성 자체가 문화유산이고 이 안에는 누구나 아는 열녀 논개 영정을 모신 사당과 남강을 굽어보는 누각 촉석루와 그 아래 의암이 있다. 그리고 국립진주박물관이 서장대 아래 위치한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이고 특히 일본에서는 가장 치욕스러운 패배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는 진주대첩이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전문 박물관이다.

 

답사는 예전 단순히 촉석루와 박물관 만을 급히 둘러봤던 기억에 천천히 곳곳을 둘러보았다. 따라서

진주성의 현존하는 북문인 공복문에 들어서서 충무공 김시민 장군상을 돌아 진주 포정사 문루를 지나고 고려 현종의 충신으로 요(거란) 성종이 회유하다 끝내 순절하였던 하공진을 모신 경절사를 참배하였다. 그 앞 운주헌 터(경상우도병마절도사 집무실, 보통 병사와 통제사의 집무실을 운주헌이라고 함)를 지나 청계서원(정신열, 정천익 선생을 모신 곳) 내로 진주성 북장대에 올라 진주 시내를 보고 내려와서 진주박물관을 관람하였다. 그리고 뒤로 돌아 (서)포루에 올랐고 그 위로 김시민, 황진, 최경회, 김천일, 장윤, 고종후 장군 등 진주대첩의 영웅들을 모신 창열사에 참배하였다. 그 옆 호국사를 지나 남강의 시원한 바람이 좋은 서장대에 올랐고 이어 진주 3.1운동 기념비를 보고 남강변 성곽길을 따라 동편 끝에 위치한 촉석루와 의암, 논개를 모신 의기사를 참배하고 나와 진주 시민들이 세운 임진대첩계사순의단(없어진 정충단을 확대 재건한 것으로 보임)과 김시민 전공비, 진주 촉석 정충단 비를 보고 나왔다.

진주성의 현존 부분은 내성으로 외성은 옛 그림에서나 확인된다. 내성의 규모도 상당하다.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지 알 수 있다. 7월 무더위에 곳곳에 행사가 한창이다.(9일의 역사-2024 진주성 전투 체험 추모)국제적인지 다양한 인종이 섞인 대학생 문화 탐방단이 촉석루 대청에 그득하고 김시민 장군상 맞은편 무대에선 2차 진주 전투가 왜군에 함락되었으나 호남을 지켜 정유재란을 막은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진주시장이 열변을 토한다. 주변으로 장군, 군졸, 기수 등 그날을 약식으로 재현하는 배우의 낯이 비장하다.

무더위에 남강변과 달리 바람도 들지 않고 무더워 행사는 오래 보지 않고 돌아서 나왔다.

진주성이 충절의 표상인데 임진왜란이 아닌 고려의 충신 하공진의 사적도 매우 중요하다. 고려 현종이 거란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개성을 버리고 몽진할 때 고려에 친히 정벌을 왔던 요 성종에 나아가 현종이 도망하는 시간을 벌어 준 것은 물론 우리의 계책인 친조 국서를 가지고 가 성종을 설득해 대군이 물리게 된 것도 하공진의 공이다.

하공진은 진양 하씨, 즉 진주 하씨로 이곳이 본향으로 이후 하씨가 거족이 되는데 중요한 인물이다. 진주 강씨와 더불어 중흥조가 되는 조선조 하연, 강석덕, 강희맹 일가의 무덤(안동 권씨 권만형 후손이 소유한 관곡지 일대는 원래 강희맹 집안의 사패지고 사위 권만형이 상속되었다. 그 전에는 태종을 도운 공신 이숙번이 사패하여 이후 강희맹 부친에게 상속됨)과 후손이 시흥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재밌는 것은 이 고려 현종부터 타성 왕후를 맞이하여 그 후 고려 왕손들은 동성이 아닌 이성 혼맥을 형성한다. 그 왕비족 공주 절도사 김은부가 현재의 시흥 지역 일부를 포함한 안산을 본관으로 하는 대성이다. 그리고 이들은 가까운 인주(인천, 경원) 이씨와 혼맥으로 문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고려 왕씨, 하씨, 강씨가 모두 현재의 시흥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국서를 받아둔 성종은 하공진을 친조 이행을 조건으로 잡아두고 회군하였다. 그렇게 인질이된 하공진은 요에 가서도 고려의 국익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를 눈여겨본 성종이 하공진을 회유하였으나 하공진은 이를 끝내 물리치고 장렬히 죽음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