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시흥, 천안 답사(시흥 오이도 선사유적 공원 1)

달이선생 2018. 6. 28. 09:40

시흥의 오래된 과거

'시흥 오이도 선사유적 공원' 답사

 

  시흥시는 서해안에 위치한 중심 도시로 지리적으로 환경적으로 평택, 화성, 안산시와 비슷하며, 도시 규모와 도시의 경제적 활동도 유사하다.

시흥시의 국가지정문화재로는 사적이 두 개, 보물이 한 개 있는데, 국보와 같은 사적은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요지(413호)와 시흥 오이도 유적(441호)이 있고, 보물은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1324호)이 있다. 

  특히 시흥 오이도 유적은 신석기 조개더미(패총)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흥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 유적이며, 문화유적이 개발의 논리로 파괴되거나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방치되는 것이 허다한 것에 비해 오이도 유적은 그곳에 사는 오이도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문화유적으로 보존하고 지킨 중요한 사적이다.

  이곳에 오이도 박물관과 선사유적공원을 건립하여 공원이 먼저 개장되었다. 경기도에 구석기를 대표하는 유적이자 구석기문화를 느낄 수 있는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과 박물관이 있다면 신석기는 시흥 오이도 유적이 있다. 명실상부하게 경기도에 선사유적을 대표하는 쌍두마차로 시흥 오이도 유적이 발돋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를 기대해 본다. 

  시흥 오이도 유적이 좋은 점은 선사문화와 시흥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 갈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며, 오이도 빨간등대로 상징되는 오이도해양단지에는 갯벌체험과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가게들이 즐비한 관광지다. 무엇보다도 오이도는 수도권의 중서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지하철 4호선이 지나고 제2,3경인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등 도로교통도 매우 잘 발달되어 있어서 가족과 나들이 하기 매우 좋다. 

  이곳 오이도는 문헌자료로 오이도(烏耳島)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세종실록(世宗實錄)』 이다. 세종 30년(1448) 8월 27일에 안산군에 속한 섬으로서 ‘오질이도 (吾叱耳島)’가 나오고 지리지 안산군조에 봉화가 있는 곳을 '오질애(吾叱哀)'가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  안산군조에도 오질이도 봉수라고 나오고 『여지도서』 오질이도, 오이도를 혼용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자 까마귀 '(오)烏'자가 쓰인 것을 두고 까마귀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오이도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잘못이다. 오이도는 까마귀와 관계가 없다. 오이도는 외딴섬인 외도, 외섬, 오이섬이 오이도가 된 것이다. 참오이는 참외, 물오이는 물외로 외와 오이가 서로 넘나드는 이치와 같다. 흔히 지명의 설을 풀이할 때 한자 본연의 뜻을 많이들 해석하는데 여기서 빚어지는 오류이다. 과거에 우리 지명은 백성들이 사용한 순우리말을 행정인 관에서 한자를 빌려 쓴 '차자'표현이다. 혹 지명의 뜻을 한자로 풀이한 경우도 있겠으나 오이도처럼 대다수 지명은 소리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오이도를 표현한 한자들이 다른 것이다. 고산자 김정호가 펴낸『대동지지』(1864)'에는 '의이도(衣耳島'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밖에 『경기지』(1864)는 옥구도(玉龜島)로 『경기읍지』(1871)와 『기전읍지』(1894)는 오이도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