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관상

달이선생 2026. 2. 25. 12:15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相好不如身好)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身好不如心好 )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白凡逸志-도진순 주해 1997, 돌베개)』 39쪽.

세상에는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철학적으로는 이를 시뮬라시옹이라고 한다. 요즘 조선의 임금 세조에 관한 이야기에 떠들썩하다 예전 송광호, 이정재 주연 관상(2013)이라는 영화에서 세조가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라고 묻는 것이 장안에 화제였다. 그리고 그의 얼굴 역시 칼자국을 내어 역신으로 묘사해 사실마냥 그린 영화였다. 세조의 어진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관상적으로 역신의 풍모도 하물며 얼굴에 칼자국이라니 세종대왕이 아낀 명석한 아들 세조가 연산군을 넘어서는 폭군의 모습이었다. 더욱이 관상쟁이한테 왕이 될 상인지 물은 것은 있을 수도 없다.

올해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감독)라는 영화가 인기다. 논란이 많다. 이 역시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고는 사실과는 다른 허구적 상상력으로 만들었다. 세조 시대 한명회, 단종, 더욱이 엄흥도의 역사상과는 너무도 괴리가 있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새해 벽두가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신수를 본다. 사람사는 세상이 너무나 변화가 크고 예측이 어려우니 당연하다. 그러한 신수를 앞서 더 쉽게 마음을 쏟는 것 중 하나가 관상이다. 점치는 것과 함께 사람들이 쉽게 믿는 이야기다. 이러한 관상에 대한 이야기로 유명한 것이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되찾고자 한평생 살았던 백범 김구에 대한 이야기고 또 하나는 만주군관 출신으로 조국근대화를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다. 둘 다 민족지도자이자 선각자이고 암살로 비운에 간 것처럼 관상이 안 좋기로 소문난 사람들이다. 특히 백범은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관상을 좋지 않음을 스스로 드러낸 인물이다.

 

 

나는 이처럼 과거길에서 불쾌한 느낌과 비관적인 생각만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와 아버님과 상의하였다.

 

"제가 어떻게든 공부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강가•이가(해주 백운방 텃골 토착양반 진주강씨와 덕수이씨)에게 당한 압제를 면할까 하였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라는 과거장의 폐해가 이와 같은즉, 제 비록 큰 선비가 되어 학력으로 강• 이씨를 압도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엽전(원문 ‘孔方’으로 네모난 구멍, 즉 엽전으로 재력을 의미)의 마력이 있는데 어찌하오리까. 또한 큰 선비가 되도록 공부를 하려면 다소의 금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집안이 이같이 가난하니 앞으로 서당 공부를 그만 두겠습니다.“

 

아버님 역시 옳게 여기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그러면 풍수공부나 관상공부를 해보아라. 풍수에 능해 명당에 조상을 모시면 자손이 복록을 누리게 되고, 관상을 잘 보면 선한 사람과 군자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치에 맞는 말이라 생각되어

 

"그것을 공부하여 보겠습니다. 서적을 얻어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아버님이 우선 『마의상서(麻衣相書 : 관상학의 2대 경전으로 달마대사가 지은 『달마상법』과 마의도사가 이 상법은 도가계의 대표적인 관상학 경전)』 한 권(冊)을 빌려 주 셔서 나는 독방에서 이것을 공부하였다. 관상서를 공부하는 방법은 먼저 거울로 자신의 상(相)을 보면서 부위와 개념을 익힌 다음, 다른 사람의 상으로 확대• 적용해 나가는 것이 첩경이다. 나는 두문불출하고 석 달 동안이나 내 상을 관상학에 따라 면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군데도 귀격(貴格)•부격(富格)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온몸에 천격(賤格) • 빈격(賓格) • 흉격(凶格)밖에 없다. 과거장에서 얻은 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상서를 공부했는데 오히려 과거장 이상의 비관에 빠져버렸다. 짐승과 같이 살기 위해 산다면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세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런데 『상서(마의상서麻衣相書)』 중 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相好不如身好상 호불여신호)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身好不如心好 신호불여심호)

 

 

이것을 보고 나는 상 좋은 사람(好相人)보다 마음 좋은 사람(好心仁)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이제부터 밖을 가꾸는 외적 수양에는 무관심하고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써 사람 구실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종전에 공부 잘하여 과거하고 벼슬하여 천한 신세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허영이고 망상이요, 마음 좋은 사람이 취할 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마음 좋지 못한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으로 되는 방법이 있는가 스스로 물어보니 역시 막연하였다.

『상서』를 그만 덮어버리고 지리에 관한 책(地家西)도 좀 보았으나 취미를 얻지 못하고, ....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白凡逸志-도진순 주해 1997, 돌베개)』 38~39쪽.

202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4주년을 맞아 수원 칠보고등학교 2학년 9반 학생들이 운동장에 백범 선생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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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사랑 『백범일지(白凡逸志)』

1949년 6월 26일 낮, 12시 36분. 경교장에서 여러 발의 총탄소리가 들린다. 향년 74세, 백범 김구(白凡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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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 이런 기적이:

근대를 향한 노력

박정희의 여러 얼굴

박정희는 호감형이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여러 면이 존재했다.

이를테면 변화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라든가.

박정희는 참 좋아하기 힘든 사람이었잖아요. 제가 대학 때 우연히 관상 잘 보는 분을 알게 되었어요.

그분이 관상 보는 법을 이야기해주셨는데, 결론은 관상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죠.

 

아무리 좋은 관상도 마음을 나쁘게 먹으면 한순간에 무너지고, 나쁜 관상도 마음 갖기에 따라 성공도 출세도 할 수 있다고요.

그 예시가 박정희였어요.

박정희는 가난하고 흉한, 한마디로 나쁜 관상인데, 눈에서는 무언가를 이루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박정희는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출세를 시키기도 하고, 좋건 나쁘건 사람들을 휘두를 텐데. 끝은 안 좋지 않겠느냐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죠. 지금도 관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박정희가 떠올라요.

우리가 쉽게 사람을 논하잖아요. 박정희가 어떤 사람이었다, 이승만이 어떤 사람이었다 하고요.

그런데 사람은 딱 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 속에 여러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박정희의 어떤 면 중에는 이상주의적인 면도 있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어떤 면을 보면 권력을 탐하고요.

한편으로는 자기 아내를 사랑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젊고 예쁜 여자들을 원했고•·· 어쨌든 박정희가 큰 변화를 일으킨 건 사실이에요.

어떤 면에 서는 4.19나 다른 무엇보다도 혁명적인 변화였을지 몰라요. 해외에서 박정희를 전문으로 연구한 저명한 교수가 한 분 있는데,

박정희에 관한 아주 두꺼운 책을 썼어요. 웬일인지 저를 몹시 존경한다면서 저서에 헌사도 써서 주었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한국학을 강연할 때 그분을 만났는데 후에 저녁을 같이하면서 하는 말이 아직 박정희의 수수께끼 중 하나를 풀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의 쿠데타에 CIA가 개입되었는지 증거를 찾으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못 찾았대요. 그래서 제가 CIA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어요.

깜짝 놀라더라고요. CIA가 그렇게 큰일을 할 수 있는 족속들이 아니다, CIA가 없었기에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건 아니잖느냐, CIA가 없어서 이라크가 난맥 상태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역사는 CIA가 쓰는 것이 아니고 수백, 수천만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고도 했어요.

CIA가 개입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요.

대신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박정희가 불법적으로 정권을 잡았는데도 18년이나 집권할 수 있었고,

그 18년 동안 한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였다는 점이요. 박정희 집권 18년이 지난 다음에는 가정부를 구할 수 없었다고,

사람들이 공장에 취업해서 착취를 당하면 당했지 이전처럼 남의 집에 들어가 더부살이하려 들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런 변화가 매우 중요한 문제라 생각한다고 말했죠.

박정희 시대는 큰 변화의 시기였어요. 제임스 팔레ames Palais 같은 사람도 박정희 때 비로소 한국이 근대국가가 되었다고 해요. 그 전 까지는 심지어 국가 예산도 미국에서 짜주다시피 했으니까요.

라종일, 김현진, 햔종희, 2021, 『한국의 발견』, 루아크, 61~63쪽.

 

 

관상이 안 좋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관상을 넘어서는 그의 능력은 한국근현대사의 획을 그었다. 그가 이룩한 산업화에 따른 조국 근대화는 도덕성과 친일, 독재를 떠나 당시 정치와 리더가 실종된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그의 커다란 업적이었다. 그가 없이도 한국 산업화는 이룩되었을 거라는 막연한 추정은 가능하다 우리 한국민의 저력이 분명히 확인된 역사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정희는 국민과 민주당. 바다 건너 미국과 선진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주영의 현대건설과 국군공병대(77회)의 헌신을 통해 428km의 예산 500억 가까이 들여 경부고속도로를 완공(1970.7.7.)하였다. 한국사회에 차량이 10만대 정도에 불과했고 국민소득이 200불도 안되던 시대였다. 불확실과 모호한 이때 과단성 있게 생각하고 실천한 것은 분명히 박정희 그이였다. 이런 예는 차고 넘친다. 녹색혁명이라는 식량 증산 역시 그 예이다. 통일벼가 그것이고 정부 주도의 차관을 통한 대규모 간척 사업(농경지 및 담수 확보)이 그것이다.

수원 옛 농촌진흥청 자리의 '녹색혁명성취', 화성시 남양방조제 '남양호' 박정희 대통령 휘호.

 

박정희 정권은 식량자급계획에 따라 대단위 금강․평택지구 농업종합개발사업을 수립하고 세계은행에서 장기저리차관(1969)을 들여와 처음 국책사업으로 시행한 것이 평택지구 간척사업이다. 이 결과 아산만방조제와 남양방조제가 1974년 5월 22일 준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