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답사를 떠나지만 나에게는 특별히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의 문제는 없다. 다만 오늘 찾아가는 강화도는 나 아닌 많은 사람들도 강화도 하면 참성단(塹星壇), 삼별초(三別抄), 외규장각(奎章閣) 등 생각나는 것이 있을 정도로 우리와 매우 친숙한 곳이며 오늘이라는 시간이 다시 오지 못할 소중한 오늘이라면 오늘의 답사 역시 특별하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강화도(江華島)는 참 재밌는 섬이다. 섬이지만 섬이 아닌 섬... 섬은 하천이나 바다라는 자연적인 경계로 뭍(육지)과 구별되어 왠지 멀리 있고 변방이자, 구석지고 외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강화도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섬 아닌 섬이다.
특히 강화도는 여느 섬과 다르게 상고시대부터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와 함께하였고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가 살아있는 '역사의 섬'이다.
강화도의 행정구역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이며 경기만(만'灣'은 바다가 육지로 깊숙히 들어간 곳을 말한다.)의 한강 하구에 위치한다. 우리 나라에 무려 다섯 번째로 손꼽히는 큰 섬이며 면적이 293㎢(391.131207평) 달하고 인구는 대략 6만여명 정도이다.
강화도의 대표적인 큰 섬은 남북 길이 30㎞, 동서 길이 12㎞, 해안선 길이 99㎞이며 본래 김포반도(반도=半島는 바다로 돌출된 육지로 작은 것은 곶이라고 하고 크면 반도라고 한다.)와 연결된 육지였으나 오랜 시간 침식작용으로 평탄해지고 침강하여 육지에서 떨어져나가 구릉으로 이루어진 섬이되었다.
따라서 강화도에는 마니산(469m)·고려산(436m)·낙조봉(343m)·혈구산(466m)·진강산(443m)·별립산(400m) 등 산지가 많으며 험준하지는 않다. 또한 곳곳에 낮고 평평한 충적지가 발달해 있다. 이러한 충적지의 평야가 발달하여 농경지로 이용되면서 강화는 섬이지만 대규모의 경작이 이루어져 오래전부터 쌀을 비롯하여 잡곡 등을 길러졌다. 특히, 인삼과 화문석은 이 지방의 전통적으로 대표적 특산품이다. 그리고 알싸한 맛이 일품인 강화 순무에 밴댕이와 새우젓으로 담근 시원한 김씨도 유명하다. 섬이라서 조기·병어·민어 등 수산물도 풍부하여 곡식이면 곡식, 고기면 고기 등 무엇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풍족한 풍요의 섬이다.
날씨는 해양성기후의 특징을 띠고 같은 위도의 내륙지방보다 따뜻하여 살기 좋으며 온화한 기후로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탱자나무·동백나무 등의 난대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섬 아닌 섬 강화도가 섬이지만 섬이 아닐 수 있도록 하는데 일등 공신은 바로 1969년 12월에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염하(鹽河=염하는 강화도 본섬과 김포반도 사이에 해협으로 한강하구에 맞닿아서 바다지만 바다 같지 않고 마치 강과 같다하여 '소금강'이라고 부르는 명칭이다.)에 세운 강화대교(694m)와 이어 1998년에 초지진 부근 강화초지대교다. 따라서 우리는 강화도를 가는데 배를 타는 수고와 낭만보다는 편리하게 다리를 통해 강화도에 들고 날수 있으며 섬 안에서도 육지 못지 않게 도로가 잘 정비되어 강화읍을 기점으로 도로가 사방으로 통해 더욱 교통이 편리하다. 오랜 역사로 인한 정서적 가까움과 함께 현대의 기술로 다리가 놓여 섬으로의 정체성이 흔들린 육지 아닌 강화도, 역시 재밌는 섬이다.
강화는 '역사의 섬'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강화도는 우리의 역사와 떼래야 뗄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이자 신석기 이후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문화를 꽃피웠던 고조선과 단군왕검의 역사가 강화도 남쪽 마니산과 정상의 참성단, 삼랑성(정족산성)에 고스란히 베어있으며 청동기시대 그 문화를 꽃피운 대표적 문화유적으로 북방식(탁자형)의 강화고인돌이 있다.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 음력 10월 3일에 건국되어 단군왕검을 국조로 모시는 대종교를 연 나철선생과 교단이 그날을 기리고 우리는 음력으로 날짜를 계산하기가 어려워 매년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삼아 이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며칠있으면 개천절로 참성단에서는 단군제가 치러진다. 뜻깊은 개천절을 앞두고 답사하게 되니 마음 한편 뿌듯함을 느낀다. 다만 단군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마니산과 참성단. 삼랑성 등을 가지는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이렇듯 상고시대 고조선의 발자취가 서려있고 삼국시대 삼국이 한강을 두고 그 교두보이자 방어지로 주목되어 치열하게 싸웠다. 그래서 당시의 행정구역이 고구려의 혈구군(穴口郡)으로 대부분 문헌에서 기록으로 보이나 〈대동지지-김정호〉에는 백제의 갑비고차현(甲比古此縣)이라고 나오므로 따라서 항쟁 와중에 처음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한강유역이 점령되어 지명이 변천된 것으로 강화도가 삼국의 항쟁이 빈번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삼국통일 후 신라는 이곳을 차지하고 해구군(海口郡)으로 개칭하고 한주(漢州 : 지금의 경기도 치소는 광주)에 예속하였다. 이때 영현으로 수진현(守鎭縣 : 본래 백제의 수지현(首知縣) 또는 신지현(新知縣)으로 고려 태조 때 진강현(鎭江縣)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에 강화에 합속됨)·호음현((沍陰縣) : 본래 백제의 동음내현(冬音乃縣) 또는 휴음현,아음현(休陰縣·芽音縣)으로 지금의 하점면 일대인데 고려 태조 때 하음현(河陰縣)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에 강화에 합속됨)·교동현(喬桐縣)이 있었다. 940년에 강화현으로 개칭했다. 고려 중기 이후 유목국가이자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의 침략을 받아 고려의 왕과 조정이 피난하여 39년간 항전을 한 국난극복의 섬이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기 앞서 고려 말기의 충정왕, 창왕, 우왕 등이 강화에 유배되었으며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세조의 즉위를 반대하여 유배되고, 최고의 폭군으로 기억되는 연산군(강화도 서북쪽 교동도에 유배) 역시 폐위되어 이곳에 유배왔다. 또한 임진왜란에 공을 세우고 중립외교로 후금의 침략을 막았던 현명한 왕인 광해군이 이복동생 영창대군과 인조의 동생인 능창대군을 유배보내어 죽었으며 사도세자의 후손이자 세도정치시기에 마지막으로 왕이되었던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군이 유배와서 죽었고 철종도 형 원경이 연루된 '민진용의 옥'으로 유배되었다. 이처럼 강화도는 '유배의 섬'이다.
왕실 종친이 죄를 지으면 벌을 주어야 하지만 왕실이 왕족을 보호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 처벌 수위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따라서 강화도는 가깝지만 섬이라는 이유로 멀고도 먼 유배지가 아닌 가까이 살필 수 있는 조선 왕족의 유배지로 적격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은 서양과 통상 거부 정책 즉 쇄국정책(鎖國政策)을 펴며 프랑스, 미국과 각각 병인, 신미양요라는 전쟁을 치루고 서구 열강과 대립하며 조선의 주권을 지켰던 섬이었다.
또한 우리 민족 최대의 시련이었던 일본 침략의 시작 역시 이곳 강화도에서 '병자수호조규(丙子修好條規)'라는 이름의 강화도 조약(1876)의 체결로 민족적 시련과 아픔도 고스란히 간직한 섬이다.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전통은 강화주민들을 강인하고 내부적 결속을 더욱 다지게 하여 특히 "암강화 숫통진" 이라는 말은 즉 "강화의 처녀가 이웃한 김포의 통진으로 시집가면 잘 살지만 통진 처녀가 강화에 시집 오면 못 산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고 특히나 강화도 조약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의 경제를 장악한 일본 상인들도 강화에 발 붙이지 못하고 나갈정도로 배타적이면서도 강인한 민족주의 정신은 역시 역사의 고장 답게 역사적으로 그 유산을 고스란히 생활로 이어오고 있는 강화도만의 특색이자 자랑(전통)이다.
현대에는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를 각각 북위 38도선으로 분리하여 그 38도선에 접하여 특히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이후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인접한 이북 지역 황해도에서 많은 실향민이 내려와 살아 민족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베어있다. 이렇듯 강화도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변방의 섬이 아닌 우리 역사의 중심으로 오늘 우리에게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자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수많은 사연과 역사가 담긴 강화도, 이제 그곳으로 떠난다...
강화삼랑성 정족산성
2010.2.18.
석릉
정제두 묘
강화오상리지석묘
2010.3.28.
2014.10.26.
석모도
2010.7.30.
교동읍성, 교동향교
교동향교는 고려 충렬왕 때 안향 선생이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공자 초상을 가져와 모신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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