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 4일 개인자격으로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정') 요인들이 귀국하였다. 8.15해방이 되고도 3달이 넘어 벌어진 일이다. 38선 이남의 어떠한 정부도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의 조치 이후 벌어진 우리 역사의 비극이었다. 이때 친일부역자로 임정의 후광으로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했던 금광업자 최창학이 자신의 별장 죽첨장을 임시정부 청사로 제공한다. 바로 임정 주석 김구 선생이 1949년 분단주의자 안두희의 총탄으로 서거하기까지 머물렀던 '서대문 경교장'이다.https://blog.naver.com/leelove97/223561419739 민족의 사랑 『백범일지(白凡逸志)』1949년 6월 26일 낮, 12시 36분. 경교장에서 여러 발의 총탄소리가 들린다. 향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