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경북 영주, 안동 답사(도산서원) 2

달이선생 2018. 5. 17. 11:30

경북 영주, 안동 답사


   경상북도는 안향(영주-순흥), 정몽주(영천)와 같은 일찍이 성리학을 들여오고 확립시킨 유교 성현의 출신지역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영남좌도의 퇴계 이황, 영남우도의 남명 조식 등 조선 유학의 대스승이 터를 일구고 후진 양성을 하여 그 역사적 뿌리와 문화가 면면히 오늘날까지 이어져 유교 문화를 잘 보존한 지역이다.

   이러한 문화를 연구하고자 국책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이 안동시 예안에 자리하고 각 문중의 귀한 자료를 수집하여 연구,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오늘 안동의 도산서원(이황)과 한국국학진흥원 내 유교문화박물관, 영주의 소수서원(안향)을 간다.



추로지향(鄒魯之鄕) 도산서원 1


   추로지향은 추나라의 맹자, 노나라의 공자의 고향으로 유교의 본향을 이르는 말이다. 도산서원 입구에는 공자의 77대 적손 공덕성(孔德成:1920~2008) 박사가 1980년 세운 <추로지향비>가 있다. 도산은 추로에 버금가는 성현이 나신 곳이라는 의미이다.

   도산서원은 조선 유학의 큰 스승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선생의 고향에 세운 서당에서 시작되었다. 퇴계학과 영남학파의 중심지, 나아가 일본 성리학에 영향을 준 일본 성리학의 대스승 이황.. 동인의 영수 김효원과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이황은 특히 인애(仁愛)를 실천한 선비다. 그가 인애를 실천하는 데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을 일군 어머니의 헌신적 사랑이 있었다. 어머니는 글을 알지 못하였으나 글을 아는 학자 못지 않은 큰 가르침을 주신 분이었다. 이러한 모친의 사랑으로 이황은 삶 내내 인애를 실천하였다. 일찍 돌아간 부인 허씨 소생의 두 아들을 정성으로 키운 첩과 그 첩의 고마움을 두 아들에게 당부하여 어머니 모시도록 하라고 가르쳤으며, 후일 첩의 소생인 아들을 호적에 올려 보답하였다. 이는 서얼이 아닌 정식 아들도 입적한 것으로 파격이다. 또한 연산군과 을사사화 등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화를 입어 큰 충격을 받아 정상적이지 못했던 권씨 부인과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제사상의 배를 훔친 부인 대신 형수에게 사죄하고 그 배를 받아서 손수 깎아주어 맛 보게 한, 상이 나 문상 가는 길에 부인이 상복인 흰 도포자락에 빨간천을 덧대서 기어주자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나가 주변 사람들이 예를 잘 아는 분이 무슨 경우가 있냐며 오해를 샀지만 부인의 정성을 지켜준 일 등 부인 권씨를 따뜻하게 보살핀 이황의 성품을 느낀다. 이러한 이황은 제자나 혹은 나이가 어리나 신분에 구애 없이 모든 사람은 정성 것 맞아준 인애를 실천한 선비였다.

  이러한 퇴계의 학문정신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적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론으로 열려 있었다. 인간의 심성을 살아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이해한다. 퇴계의 수양론은 심(心)과 경(敬)으로 심은 수양이 이루어지는 바탕이고, 경은 수양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퇴계의 학문적 관심은 항상 인간의 도덕적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수양론이므로 이 '경'이 퇴계 사상의 핵심이며, 위의 인애를 실천한 일화 등은 바로 이 경의 태도를 한 평생 몸소 실천하였던 인격자이다.

   시흥시와 관련하여 퇴계 선생의 제자 성락(成洛, 1542~1588)의 묘소가 현재 창녕성씨 세장지인 시흥시 미산동(산30-6, 재실 인현재仁峴齋)에 있다. 성락은 감사 성세평의 아들이자 청백리 성영의 형이다. 문과 급제로 승지에 이르렀으며, 정여립의 요직 임면을 반대하여 탄핵받았고 이원익과는 동지였다. 평생 청빈하게 살았다.

   퇴계 선생의 주자학이 일본 성리학의 중심이 되었는데 이러한 역할에는 일본 성리학의 아버지 강항이 있다. 강항(姜沆)은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 관곡지(官谷池)와 관련된 강희맹(姜希孟)의 5대손이다.

   오늘 퇴계 선생이 거닐며, 후학을 양성하고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하였던 도산서원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