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백 4

2023 수원 문화재 야행과 수원시 박물관 나들이

특별한 것이 없다면 수원에 사는 이상 수원에서 펼쳐지는 여러 행사에 찾는 편이다. 집에서 가까운 화성행궁은 문화의 중심지가 된지 오래라 여러 행사들이 일년 내내 펼쳐지는데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화성 야행을 찾았다. 화성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야행은 해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갖가지 늦은 시간 여러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작년에는 수원천변에서 화홍문을 중심으로 비디오아트 등 눈요깃거리가 많았는데 올 해는 조금 달랐다. 그 중 눈이 간 것은 수원시가 발굴하고 수원에서 널리 알리고 있는 수원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프로그램이다. 이미 야행 이전에 연극이나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져 수원시민에게 소개된 인물들인데, 야행을 통해 거리극으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로 주목 받..

효암

효암孝巖의 유래 소재지 :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 홍법산弘法山 기슭에 있는 이 효암은 고려 의종毅宗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효자 최누백崔婁伯이 사냥을 하다가 호랑이에게 물려죽자 곧 도끼를 매고 추적해 이 바위 아래에서 범을 잡아 부친의 원수를 갚고 또 호환虎患으로 난리를 겪던 이곳 백성들의 걱정을 덜어 주어 칭송을 받았던 곳이다. 지금의 수기촌과 분천 일대는 고려 때에 용성현龍城縣에 속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삼봉三峯이라 불리던 것을 일제가 삼봉 갈담葛潭을 합쳐 봉담으로 개명하였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正祖大王은 효성이 지극했던 임금으로 아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陵을 이곳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자주 이곳에 행차 했는데 행차 길에 최공의 후손을 불러 훌륭한 조사이라 극찬하며 수..

최루백 효자비각

인물은 한림 학사 국자 좨주 최누백(崔婁伯)이다. (【고려 인종(仁宗) 때 사람이다. 】人勿, 翰林學士國子祭酒崔婁伯, 高麗、仁宗特人)-세종실록 148권, 지리지 경기 수원 도호부 전근대시대 수원을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바로 수원최씨의 비조가 되는 효자 최루백(?~1206)이다. 수원을 본향으로 하는 성씨 중 최씨는 둘인데 그중 본최(本崔) 또는 원최(原崔)가 되는 것이 최루백의 수원최씨다. 화성시 매송면에 무덤이 전하는 비조 최영규는 수원최씨, 수성최씨로 불리는 내최(來崔)이다. 최루백은 고려 때 수원의 호장 최상저(崔尙翥)의 아들로 한림학사를 지내 인근 화산에 사도세자를 모신 정조가 "최학사"로 칭했던 인물이다. 특히 정조는 이를 더하여 최루백이 아버지 최상저의 시신을 수습한 바위를 효암으로 명하..

호랑이와 싸운 최루백

호랑이와 싸운 효자 최루백 조선시대 윤리서인「삼강행실도」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인물이 나온다. 바로 수원 최씨 최루백(崔婁伯)의 이야기로 호랑이를 잡아 효도를 다한 이야기이다. “최루백은 고려 시대 수주부(수원)의 호장 최상저에 아들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최루백은 당장 산으로 올라가 그 호랑이를 잡으려고 하였다. 이때 최루백의 나이는 15세에 불과했는데 놀란 어머니가 남편에 이어 아들마저 잃게 될까봐 만류하였다. 이 때 최루백은 ‘어머니! 어떻게 아버지 원수를 갚지 않고 이대로 견딘단 말입니까.’라고하면서 즉시 도끼를 메고 호랑이의 발자국을 따라가니, 산등성이 저만치 호랑이가 사람 하나를 다 먹은 뒤, 배가 불러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최루백은 호랑이 앞으로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