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사직(宗廟社稷)
동아시아문화권에서 종묘사직은 국가를 의미한다. 이는 국가의 지존 역대 군왕의 신주를 받드는 왕실사당 종묘와 국가경영에 있어 제일 중요한 토지와 곡식을 신격화하여 받드는 사직이 합쳐져 있기 때문이다.
유교국가에서 열성조를 받드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례이다. 종묘가 없는 일본조차 만세일계라하여 덴노를 모신 신사(진무덴노 가시하라신궁)를 떠받들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엄숙함과 경이로움, 이러한 영감을 주는 종묘는 박제화 되고 쓰러져 가는 그것과는 다른 생동하는 공간이다. 이는 단순히 공간과 건축적 미학만이 아닌 실제적 쓰임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종묘제례이다. 조선은 망했지만 왕실성인 전주이씨 종약원을 주축으로 제례를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제례에 이어지는 종묘 제례악과 문무, 무무인 8일무가 행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을 사대하는 제후국으로 6일무(가로 세로 6명 도열 총 36명)를 췄다.
전근대 산업화 이전 보통의 강역국가는 농업이 국가의 중심이다. 우리는 농자천하지대본야라며 농업을 가장 중시하였다. 따라서 농업의 기초가 되는 토지와 곡물은 국가경영에서 최우선적인 역량이자 과제였다. 농업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당연하며, 이를 중시하고 천명하는 상징적 의례로 사직단을 세우고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은 군왕의 책무였다.
따라서 조선의 지방 수령은 왕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각 지방 관아에 객사를 두고 왕의 상징 전패를 모시는 한편, 좌묘우사(左廟右社, 좌로 사묘 우로 사직)라는 전통입지 원칙하에 관아 서쪽 양지짝에 사직단을 세우고 제를 봉행하였다.
아직도 지방 곳곳에 관아는 물론 사직단이 잘 남아 있은 경우는 드물지만 지방행정 치소인 읍치의 기본이다. 그렇긴해도 아랫지방 창녕 등 여러곳에서 복원하여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울 사직단의 규모보다는 대락 절반 정도의 규모이다.
2010.7.10.
사직
201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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