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26

효자 이곤 선생 이야기(문화의 뜰 93호, 화성문화원)

문화의 뜰(2022 봄.여름, 93호. 화성문화원) 효자 이곤 선생 이야기 화성문화원에서 계간지 문화의 뜰 원고 청탁을 받아 그간 화성시 효자로 널리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실 확인이 안되었던 이곤 선생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선생의 신상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게 되었던 본격적인 연구의 시작이 된 블로그 게시글이다. 이곤 선생 효자문( https://blog.naver.com/leelove97/222106465057) 이곤 선생 효자문 화성시 봉담읍은 전근대시대 수원에 속하는 곳으로 고려시대 대표적 효자 수원최씨 최루백(崔婁伯)의 본향... blog.naver.com 문화의 뜰 책자

화성맥주

화성에서 온 맥주 2000년대 들어 많이 이야기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미래 먹거리'라는 이야기다. 그런 것중 하나가 지역브랜딩(로컬브랜드)이 있다. 이러한 사례는 이미 전국에 많이 있다. 우리는 단순 축제로 여기지만 강원도 외진 산촌인 화천군의 '산천어축제' 자체가 이미 지역브랜딩을 한 지역브랜드다. 그래서 지역들은 저마다 여기 저기서 서로 벤치마킹까지 하고 있기도 하다. 전국에 성공적인 지역브랜드로 수제맥주도 이미 흥행이 검증된 상품이다. 가깝게는 이천시에 '더홋브루어리'가 유명한데 특히 이곳은 농촌마을과 협업을 통해 맥주 원료인 홋을 직접 생산하며 농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영농조합이 결성되고 이천의 대표적 농특산물인 쌀을 주원료로 하는 수제맥주로서 지역내 유통은 물론 자체 펍(맥주바)까지 운영하..

화성시 매향리평화기념관, 궁평리 해안, 서해랑 제부도해상케이블카

화성시 매향리평화기념관, 궁평리 해안, 서해랑 제부도해상케이블카 문화관련자에게는 경기도 서남부 해안 일대는 경기만에코뮤지엄으로 친숙한 곳이다. 경기만에 걸친 경기도 화성시와 평택시, 안산시, 시흥시 등 경기문화재단과 각 지자체들의 문화 등 여러 기관과 손을 맞잡고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쳤다. 여기 화성시는 미공군 쿠니사격장이 폐쇄되고 매향리평화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매향리 농섬은 한국전쟁 이후 폭격의 섬에서 평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https://blog.naver.com/leelove97/222397463818 쿠니사격장, 농섬, 매향리역사기념관, 매향리평화생태공원, 화성시 공예문화관 고온리(Koonny-쿠니)사격장, 농섬, 매향리역사기념관, 매향리평화생태공원, 화성시 공예문화관 2001년 처... b..

소다미술관, 만년제, 안녕리 표석

소다미술관, 만년제 화성에서 자랐지만 종종 화성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처럼 말이다. 6월 17일 화성시 안녕동 소다미술관을 찾았다. 소다미술관은 유명한 곳이었다. ‘인스타 미술관’, ‘하이브리드 미술관’ 등 으로 이야기되는 유명세가 있는 곳인데 지금껏 모르고 살았다. 이곳 장동선 관장은 사립미술관이지만 하루평균 주말 4,5백, 평일 1,2백명이 찾고 있어 이렇게 모인 관람료를 총 운영비 절반을 감당한다고 하니 여느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 운영조건이 매우 양호하다. 그런데 소다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주변에 즐길 거리가 없다. 볼게 없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역사를 전공하여 이런 이야기를 듣노라면 본능적으로 '왜 없어 이렇게 많은데' 바로 옆 만년제니..

쿠니사격장, 농섬, 매향리역사기념관, 매향리평화생태공원, 화성시 공예문화관

고온리(Koonny-쿠니)사격장, 농섬, 매향리역사기념관, 매향리평화생태공원, 화성시 공예문화관 2001년 처음 매향리에 갔었다. 그리고 6월 12일 이곳을 찾았다. 화성시 장안면 덕다리가 고향이지만 매향리를 처음으로 찾은 것은 2001년 군입대 이후였다. 엄밀히 말하면 의무전투경찰순경 일명 '의경'을 지원하면서 가게 되었다. 예전에는 전투경찰기수, 의경기수와 무전기 음어 등을 달달외웠는데 마흔이 넘어서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 덕다리 수렁계는 송탄 오산미군기지에서 매향리로 가는 하늘길로 낮이건 밤이건 처음 보는 신식의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수시로 저공비행으로 날아 들었다. 여러 전투 헬기는 물론 일명 잠자리 헬기로 부른 치누크 헬기도 조종사와 기관총이 다 보일 정도로 지나갔다. ..

다정마을, 정추 효자문

다정마을은 화성시 매송면 어천1리로 면소재지이다. 최근 개통된 수인분당선 어천역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다. 마을에 들어서서 주민센터에 이르면 장승이 맞이하고 그 맞은편으로 계곡에 안기듯 마을이 자리한다. 마을은 2013년부터 이광재 이장과 주민들이 합심하여 마을가꾸기 사업으로 여러 공모사업을 진행하면서 이제는 '다정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정마을은 '정이 많고 우물이 많은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로 들어가려면 마을에서 가장 큰우물로 '가운데 우물'이라고 불리는 우물이 길손을 맞는다. 우물고사와 당제를 지내는 마을에 중요한 곳이었으나 점차 쓰임이 없어 쇠락하던 곳을 공모사업을 통해서 우물을 정비하고 마을의 대표적인 공간과 상징을 바꾸었다. 우물 곁에 이장님 소유의 개방형 텃밭까지 ..

요리 금동관 다시 깨어나다

화성시 역사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 기획전시 화성시 박물관은 2011년 향토사료관으로 시작하여 어엿한 1종 전문박물관으로 거듭났다. 전문박물관으로서 화성시 역사박물관이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화성시는 전근대시대 남양과 수원지역을 아우르는 곳으로 고려 때 폐현이 되고 속현으로 오다 조선에서 완전히 혁파된 쌍부현(우정읍, 장안면)까지 전통시대 옛 행정구역이 존재하며 각기 다양한 문화와 경제, 역사를 이루고 있다. blog.naver.com/leelove97/222340039662 화성시 역사박물관 화성 유일의 박물관인 '화성시 역사박물관'은 화성시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고 연구하는... blog.naver.com 더욱이 이번 블로그의 주제이기도 한데 최근 고고학 연구에 따라 화성시 정..

명랑경기학2(물) '화성시 찬우물마을의 어제와 오늘

2020 경기지역학활성화 공모지원 개인연구 모음집(경기문화재단) 생기를 찾아가는 명랑경기학2 물 '화성시 찬우물마을의 어제와 오늘' 중심에서 주변으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역사학의 주된 관심도 21세기 들어 더욱 작아지고 넓게 이루지면서 '지역학'이라는 이름으로 활성화 되고 있다. 경기지역학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중 지역연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것이 '명랑경기학' 시리즈이다. 경기도 각 지역에서 전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로 삶과 생활사 조사연구 등을 공모 형식으로 연구 진행한 연구모음집이다. 2019년 처음 생기를 찾아가는 명랑경기학1 흙, '시흥시의 어제와 오늘-간척을 중심으로'를 쓰고 두 번째 참여가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제와 오늘'이..

효암

효암孝巖의 유래 소재지 :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 홍법산弘法山 기슭에 있는 이 효암은 고려 의종毅宗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효자 최누백崔婁伯이 사냥을 하다가 호랑이에게 물려죽자 곧 도끼를 매고 추적해 이 바위 아래에서 범을 잡아 부친의 원수를 갚고 또 호환虎患으로 난리를 겪던 이곳 백성들의 걱정을 덜어 주어 칭송을 받았던 곳이다. 지금의 수기촌과 분천 일대는 고려 때에 용성현龍城縣에 속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삼봉三峯이라 불리던 것을 일제가 삼봉 갈담葛潭을 합쳐 봉담으로 개명하였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正祖大王은 효성이 지극했던 임금으로 아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陵을 이곳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자주 이곳에 행차 했는데 행차 길에 최공의 후손을 불러 훌륭한 조사이라 극찬하며 수..

최루백 효자비각

인물은 한림 학사 국자 좨주 최누백(崔婁伯)이다. (【고려 인종(仁宗) 때 사람이다. 】人勿, 翰林學士國子祭酒崔婁伯, 高麗、仁宗特人)-세종실록 148권, 지리지 경기 수원 도호부 전근대시대 수원을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바로 수원최씨의 비조가 되는 효자 최루백(?~1206)이다. 수원을 본향으로 하는 성씨 중 최씨는 둘인데 그중 본최(本崔) 또는 원최(原崔)가 되는 것이 최루백의 수원최씨다. 화성시 매송면에 무덤이 전하는 비조 최영규는 수원최씨, 수성최씨로 불리는 내최(來崔)이다. 최루백은 고려 때 수원의 호장 최상저(崔尙翥)의 아들로 한림학사를 지내 인근 화산에 사도세자를 모신 정조가 "최학사"로 칭했던 인물이다. 특히 정조는 이를 더하여 최루백이 아버지 최상저의 시신을 수습한 바위를 효암으로 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