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만제 3

서호천 십리길, 화산교에서 평고교까지

서호천 십리길, 화산교(여기산)에서 평고교(평동)까지 서호천 십리길은 수원시 서호천변 길이다. 서호천(西湖川)은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파장저수지와 웃파장천이 만나고 이어 이목천을 만나 흐르다가 천천교(동남대학교) 부근에서 영화천(만석거)을 만나서 축만제(서호)에 다다른다. 축만제에 가둬진 물이 다시금 시작(축만교 아래 수문)되는 서호천길을 나선 것은 여기산 북쪽 아래 화산교(화서역)에서부터 축만제 둘레길을 지나 항미정(축만교), 서둔교(수인로), 농대교(옛 서울농대, 현 경기도상상캠퍼스 등), 벌말교(옛 선경직물 수원공장), 평동(고색동) 평고교까지 이르는 길이 4km가 조금 안되나 얼추 십리길이다. 지금 이 길은 수원시에서는 팔색길의 하나로 모수길로 한 길이고 경기도에서는 삼남길로 부르는 길이다. 도보로..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축만제[서호], 항미정) 3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 2019. 3. 3, 3. 9(2일 2차례 답사) 전근대 수원은 화성시, 오산시까지 아우르는 큰 고을이었다. 수원(水原)이라는 한자 명을 보더라도 물이 풍부한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수원시와 화성시 등에는 많은 저수지들이 즐비하다. 삼한시대 모수국(牟水國) '벌물'의 뜻으로 '수원'의 뜻인 '물벌'과 같다. '모수'도 물을 뜻하고 고구려의 '매홀(買忽)'도 물을 뜻하는 것처럼 고려 때 '수성(水城)', '수주(水州)'에서 현재의 수원으로 변천한 명실공히 물의 도시가 수원이다. 이런 수원이 근현대 농업에서 중요한 변화를 맞는다. 조선후기 정조가 화성행행을 하며, 화산에 아버지 장헌세자묘(현륭원, 현재 융릉)를 천봉하고, 이어 화성행궁과 화성성곽을 연이어 축조하였다. 또한 신도시..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권업모범장, 농촌진흥청) 1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 2019. 3. 3, 3. 9(2일 3차례 답사) 전근대 수원은 화성시, 오산시까지 아우르는 큰 고을이었다. 수원(水原)이라는 한자 명을 보더라도 물이 풍부한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수원시와 화성시 등에는 많은 저수지들이 즐비하다. 삼한시대 모수국(牟水國) '벌물'의 뜻으로 '수원'의 뜻인 '물벌'과 같다. '모수'도 물을 뜻하고 고구려의 '매홀(買忽)'도 물을 뜻하는 것처럼 고려 때 '수성(水城)', '수주(水州)'에서 현재의 수원으로 변천한 명실공히 물의 도시가 수원이다. 이런 수원이 근현대 농업에서 중요한 변화를 맞는다. 조선후기 정조가 화성행행을 하며, 화산에 아버지 묘를 천봉하고, 이어 행궁과 화성을 연이어 축조하고 수원이 명실공히 대도회지로 자족적인 신도시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