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 6

소래염전 소금창고 그리고 가시렁차, 시흥 갯골생태공원

소래염전 그리고 가시렁차, 시흥 갯골생태공원 동아일보 1937년 7월 11일자 기사에 '58만원으로 대염전 기공-부천군 소래면에서'라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시흥 갯골생태공원은 일제가 만든 대규모 천일염전인 소래염전이었다. 그 이전에는 당연히 바다였다. 소래염전은 1934년 착공하여 1937년 완공하였다. 부지는 지금의 시흥시 장곡동, 신현동, 월곶동에서 인천시 남동면 논현동까지 이어지는 대규모로 평수로 149만평(일제측 549정보)에 이르렀다. 공사에 동원된 인원도 연인원 40만명이 넘었고, 공사비도 60만원이 들었다. 군자염전과 마찬가지로 소래염전을 건설할 때도 중국인 노동자(쿨리)가 대거 참여하였다. 소래염전 축조를 알리는 동아일보 기사(출처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https://news..

삼전도비

삼전도비(三田渡碑) 장유(張維)·이경전(李慶全)·조희일(趙希逸)·이경석(李景奭)에게 명하여 삼전도비(三田渡碑)의 글을 짓게 하였는데, 장유 등이 다 상소하여 사양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세 신하가 마지못하여 다 지어 바쳤는데 조희일은 고의로 글을 거칠게 만들어 채용되지 않기를 바랐고 이경전은 병 때문에 짓지 못하였으므로, 마침내 이경석의 글을 썼다.(己丑/命張維、李慶全、趙希逸、李景奭, 撰三田渡碑文。 維等皆上疏辭之, 上不從。 三臣不得已皆製進, 而希逸故澁其辭, 冀不中用, 李慶全病不製, 卒用景奭之文)-인조실록 35권, 인조 15년(1637) 11월 25일 기축 1번째기사 이 기록은 삼전도비를 세우기 위해 삼전도비문 혹은 송로 문자(頌虜文字)로 불리는 것을 지은 기사이다. 삼전도비의 정식 명칭은 삼전도비..

장유 선생 묘 및 신도비(시흥시 향토유적 제2호)

장유 선생 묘 및 신도비 2016년 9월 26일 신풍부원군 장유의 묘는 덕수장씨 세장지인 시흥시 장곡동 상양산 자락에서 장유 선생의 외손자인 조선 현종의 특별히 살핌으로 새롭게 자리를 잡은 곳이다. 이곳의 지명은 '장군재'로 성씨 '장' 봉군 '군' 고개 '재'를 따서 지은 것이다. 딸인 인선왕후가 현종을 낳아 이후 왕통은 모두 인선왕후의 혈육이 된다. 정조가 1789년 8월 행행(行幸)에서 16일 안산관아에 머물면서 "우리나라에 본디 현명한 국구(國舅)가 많으나, 문장과 공업(功業)의 성대함으로는 신풍부원군만한 이가 없다. 숭릉(崇陵-현종) 어필(御筆) 신도비(神道碑)의 성대한 유적을 추모하니 배나 슬픈 생각이 든다. 고 부원군 장유와 영가 부부인 김씨의 묘소에 승지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