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4

진무공신 한풍군 최응일 묘

진무공신 한풍군 최응일 묘 "진무 공신(振武功臣) 27인을 책정하였다. 장만(張晩)·정충신(鄭忠信)·남이흥(南以興)을 1등에 세 자급(資級)을 올리고, 이수일(李守一)·변흡(邊潝)·유효걸(柳孝傑)·김경운(金慶雲)·이희건(李希健)·조시준(趙時俊)·박상(朴瑺)·성대훈(成大勳)을 2등에 두 자급을 올리고, 신경원(申景瑗)·김완(金完)·이신(李愼)·이휴복(李休復)·송덕영(宋德榮)·최응일(崔應一)·김양언(金良彦)·김태흘(金泰屹)·오박(吳珀)·최응수(崔應水)·지계최(池繼崔)·이락(李洛)·이경정(李慶禎)·이택(李澤)·이정(李靖)·안몽윤(安夢尹)을 3등에 한 자급을 올렸다.(策振武功臣二十七人。 以張晩、鄭忠信、南以興爲一等, 超三資; 李守一、邊潝、柳孝傑、金慶雲、李希健、趙時俊、朴瑺、成大勳爲二等, 超二資; 申景瑗、金完、李愼、..

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한준겸)

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 경기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은 인조의 장인 한준겸(韓浚謙, 1557~1627)의 시호 문익(文翼)을 따서 그 직계로 아들 한회일, 손자 한이성, 증손자 한두상 묘 등 4대에 걸치 묘역이다. 아래는 조선왕조실록 한준겸의 졸기이다. 영돈녕부사 서평 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이 졸하였다. 한준겸의 자는 익지(益之)이고 호는 유천(柳川)인데 청주인(淸州人)이다. 풍채가 뛰어나고 기량이 넓으므로 일찍부터 공보(公輔)의 촉망을 지니고 있었다. 일찍이 북방의 관찰사가 되어서는 먼저 《가례》와 《소학》을 간행하여 언서(諺書)로 번역하였고, 또 《의례》를 모방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와 향사례(鄕射禮)를 제정하였으며, 외직으로 나가거나 내직으로 들어오거나 근면하였..

삼전도비

삼전도비(三田渡碑) 장유(張維)·이경전(李慶全)·조희일(趙希逸)·이경석(李景奭)에게 명하여 삼전도비(三田渡碑)의 글을 짓게 하였는데, 장유 등이 다 상소하여 사양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세 신하가 마지못하여 다 지어 바쳤는데 조희일은 고의로 글을 거칠게 만들어 채용되지 않기를 바랐고 이경전은 병 때문에 짓지 못하였으므로, 마침내 이경석의 글을 썼다.(己丑/命張維、李慶全、趙希逸、李景奭, 撰三田渡碑文。 維等皆上疏辭之, 上不從。 三臣不得已皆製進, 而希逸故澁其辭, 冀不中用, 李慶全病不製, 卒用景奭之文)-인조실록 35권, 인조 15년(1637) 11월 25일 기축 1번째기사 이 기록은 삼전도비를 세우기 위해 삼전도비문 혹은 송로 문자(頌虜文字)로 불리는 것을 지은 기사이다. 삼전도비의 정식 명칭은 삼전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