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 5

선거연수원, 선거전시체험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선거전시체험관 수원시 여기산 아래 서호를 바라보는 양지바른 곳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이 위치하고 있다. 원래 서울 종로5가에 설치(1996)되었으나 2017년 11월 7일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선거연수원이 자리잡은 이곳은 나주혁신도시로 이전된 옛 농촌진흥청 부지이다. 연수원 뒷산은 여기산으로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유물이 나온 여기산 선사유적지이고 연수원 앞 너른 호수는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을 쌓고 자족적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축조한 축만제(서호)로 축만제둔 일명 '서둔'이라고 불린 너른 곡창지대의 젖줄이다. 지금은 서호 동편으로 중부작물부가 운영하는 농업시험장 일부가 남아 예전 서둔의 역사성을 드러내준다. 사실 대유평(북둔)이라고 불린 너른 곡창지대인 만석거에 비한다면..

수원 청년 독립을 외치다 서호 구국민단 결사

수원 청년 독립을 외치다 서호 구국민단 결사 수원지역 수원읍 3.1운동 기독교 청년이 이끌다 수원지역은 3.1만세운동이 강렬하게 전개된 대표적인 곳이다. 처음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방화수류정(용두각)에서 지식인, 청년학생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특히 이 시위의 배후로 남수리 출생의 삼일학교 교사이자 민족대표 48인 중 기독교 측 대표로 참여한 김세환(金世煥, 1889.11.18. ~ 1945.9.26.)이 있었고 수원상업강습소 김노적, 박선태, 임순남, 최문순, 이득수(종상), 김석호, 김병갑, 이희경, 신용준, 이선경 등 기독교도와 학생들이 중심이었다. 이후로 수원읍 시위는 3.16 장날을 기해 서장대 연무대에서 수백 명이 만세를 부르며 시가지로 나가 종로를 지나 벌이고 이를 일제..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축만제[서호], 항미정) 3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 2019. 3. 3, 3. 9(2일 2차례 답사) 전근대 수원은 화성시, 오산시까지 아우르는 큰 고을이었다. 수원(水原)이라는 한자 명을 보더라도 물이 풍부한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수원시와 화성시 등에는 많은 저수지들이 즐비하다. 삼한시대 모수국(牟水國) '벌물'의 뜻으로 '수원'의 뜻인 '물벌'과 같다. '모수'도 물을 뜻하고 고구려의 '매홀(買忽)'도 물을 뜻하는 것처럼 고려 때 '수성(水城)', '수주(水州)'에서 현재의 수원으로 변천한 명실공히 물의 도시가 수원이다. 이런 수원이 근현대 농업에서 중요한 변화를 맞는다. 조선후기 정조가 화성행행을 하며, 화산에 아버지 장헌세자묘(현륭원, 현재 융릉)를 천봉하고, 이어 화성행궁과 화성성곽을 연이어 축조하였다. 또한 신도시..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여기산, 우장춘, 정남규, 김인환 박사묘) 2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 2019. 3. 3 농촌진흥청이 위치했던 서호 서쪽 구릉은 여기산으로 이곳은 청동기 원삼국기의 대단위 생활유적(집터, 부뚜막) 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한국 농업사의 큰 스승인 우장춘 박사와 농업진흥청 초대 청장 정남규 박사, 그리고 배고픔에서 해방시킨 벼의 혁명 '통일벼'의 아버지 김인환 박사의 묘가 있다. 입산이 통제되는 곳이라 쉽게 찾을 수는 없는 곳으로 입산금지 푯말이 서있는 초입에서 경사로를 올라가면 먼저 정면으로 우장춘 박사묘가 나오고 무덤 좌측 구릉에 김인환 박사 묘가 연이어 있다. 여기를 지나 올라온 만큼 더 가면 정상부에 정남규 박사의 묘가 자리한다. '씨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져 있는 우장춘 박사, 실제 우리가 더 그를 가까이 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배추..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권업모범장, 농촌진흥청) 1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 2019. 3. 3, 3. 9(2일 3차례 답사) 전근대 수원은 화성시, 오산시까지 아우르는 큰 고을이었다. 수원(水原)이라는 한자 명을 보더라도 물이 풍부한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수원시와 화성시 등에는 많은 저수지들이 즐비하다. 삼한시대 모수국(牟水國) '벌물'의 뜻으로 '수원'의 뜻인 '물벌'과 같다. '모수'도 물을 뜻하고 고구려의 '매홀(買忽)'도 물을 뜻하는 것처럼 고려 때 '수성(水城)', '수주(水州)'에서 현재의 수원으로 변천한 명실공히 물의 도시가 수원이다. 이런 수원이 근현대 농업에서 중요한 변화를 맞는다. 조선후기 정조가 화성행행을 하며, 화산에 아버지 묘를 천봉하고, 이어 행궁과 화성을 연이어 축조하고 수원이 명실공히 대도회지로 자족적인 신도시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