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5

강화 하곡(하일리) 정제두 유허지

상도면(上道面) 187. 하일동(霞逸洞) 하현(霞峴)의 서남쪽은 골짝마다 그윽한데(霞峴西南谷谷幽), 재상이 예로부터 이 산중에 머물고 있네(山中宰相古今留). 두 정승(정제두, 최규서)의 집터와 세 정승의 무덤(정유성, 정제두, 권개) 있어(二公宅址三公墓), 이곳을 강화도의 ʻ제일구(第一區)ʼ이라고 부른다네(云是江州第一區). 상도면(上道面)은 강화부 관아 남쪽 35리에 있다. 도촌 정유성(陶村 鄭維城)은 묘는 하일리(霞逸里)의 서쪽 산기슭에 있다. 정제두는 도촌의 손자이다. 집터가 여기에 있는데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고향에 은거하면서 도학을 온전히 갖추었으며 오조를 거쳐 국태로(國太老)의 학자라고 하였다. 또 하곡 선생이라고 불리었으며, 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

서세 283주기 하곡 정제두 선생 묘제

8월에 강화(江華) 하곡(霞谷)으로 옮겨서 살았다. 선생은 장손이 요사하는 변을 당하자 몹시 슬퍼하였으며 따라서 선묘(先墓) 가까운 곳에 살고자 하여 이곳으로 이사하였다.(八月移居江華之霞谷。先生遭長孫殤悲哀。仍欲依近先墓。遷居于此。) -하곡집, 연보 조선의 양명학자 정제두 선생은 1709년(숙종 35) 61세에 안산군 추곡(楸谷,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에서 강화도 하일리로 이사하였다. 고령의 나이에 증조부 정근, 할아버지 정유성, 아버지 정상징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정제두 선생을 길러주신 할아버지 정유성의 고향이자 외가였다. 숙종과 영조로 부터 여러 벼슬을 제수 받았고, 특히 젊은 영조는 노론 중심의 정국에서 소론을 아우르는 탕평책을 펴며, 소론의 중심된 학자이자 원로였던 정제두를 가..

마리 강화나들길 '산길따라 뚝방 길따라'

역사의 고장 강화에서 농촌, 산촌, 어촌이 어울린 자연경관을 보고 느끼는 '마리 강화나들길' '마리 강화나들길'은 제주도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이 있다면 우리 강화에는 나들길이 있다. 나들길의 유래는 강화군 불은면 두두미 마을에 살던 화남 고재형 선생이 구한말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고 자신이 살던 강화에 물밀듯 밀려드는 서구문화에 위기감을 느끼던 차에 강화의 전통과 역사를 지키고자 강화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살피고 시를 남겼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화남 선생이 걸었던 그 길을 오늘 강화 관광개발사업소가 개발하고 강화시민연대(시민단체)가 함께 강화의 문화적 자산으로 나들길을 보급하고 있다. 우리 마리학교에서는 마리학교를 중심으로 강화도의 역사. 문화, 그리고 농, 산, 어촌의 어울림이 있는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