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욱 4

시흥시 '독립지사 윤동욱 기념비'

1919년 3.1운동 당시 시흥지역은 3월 30일 수암면에서 윤동욱 지사와 윤병소, 홍순칠, 유익수, 이봉문, 김병권 지사 등으로 촉발된 만세운동이 주민 2천여명이 참여하는 시흥지역 최대 규모의 만세운동을 벌였다(비석거리). 당시 윤동욱 지사는 수암경찰관주재소의 순사 임건호에게 “당신도 조선인이니 만세를 부르라”라고 권유하였으며, 만세운동 내내 평화적 시위가 되도록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시흥지역 3.1만세시위는 군자면으로 이어져 4월 4일 김천복, 강은식 지사의 주도 아래 군자면사무소 일대에서 주민 천여명이 넘는 대규모 만세시위를 벌였고, 4월 6일에는 7일에 구 석곡산대장터에서 권희, 장수산 지사가 만세운동을 모의하였으나 4월 3일 영등포에서 파견된 일제 군경에 의해 체포되어 무산되었다. ..

시흥군(始興群) 수암면(秀岩面) 3․1운동과 윤동욱(尹東旭)의 사상(思想)

시흥군(始興群) 수암면(秀岩面) 3․1운동과 윤동욱(尹東旭)의 사상(思想) 산현동 윤동욱 선생의 생가(손자 윤성준 가옥)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적인 독립만세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만세운동의 촉발은 일본제국주의의 불법적 침탈에 따른 것으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시작으로 1910년 한일병합으로 식민지배를 확정하였다. 따라서 일제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설치하고 헌병경찰제(憲兵警察制)를 통한 무단통치(武斷統治)를 실시하여 야만적인 탄압과 수탈을 자행한다. 3∙1운동은 바로 이러한 일제에 맞서 자발적이고 거국적으로 이루어진 민족적 저항이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각 지역의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전 계층이 일제에 맞서 항일만세운동을 일을 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