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채 7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입향조 김우증 묘(김여광, 김계, 김태로 묘)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입향조 정국공신 김우증 묘역 -김우증 신도비, 청평사(사당), 김우증 묘 및 묘갈, 김여광 묘, 김계 묘 및 묘갈, 김태로 묘, 김충백 부인 전주이씨묘 청풍김씨 판서공파 세도의 비조인 정국공신 김우증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3등이 되면서 이곳 왕림을 사패하였다. 이곳에서 손자인 계자 김계 이하 후손들이 현달하였는데, 특히 인백파라 불린 김계의 3남 김인백의 후손들에서 재상이 6명이나 배출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그의 묘갈은 인백파 후손 영의정 김상로가 묘갈을 지었고 그의 신도비 역시 김상로가 짓고 또 후손이자 영의정을 역임한 김치인이 써서 위엄있게 세웠다. 이 신도비의 내용을 보면 김계 이하 아들들을 지파로 후손이 번창하고 현달한 내용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후손들이 2백여명이..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유 선생 묘 및 신도비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유 선생 묘 및 신도비(김유 선생 묘역)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의 왕림마을은 숙,영,정조시기 세도가였던 청풍김씨 판서공파의 사패지로 입향조인 정국공신 김우증과 후손의 묘역과 세거지가 있는 곳이다. 2020년 1월 6일 월요일 눈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답사를 하였다. 1번 국도를 따라 의왕시 고천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고천동주민센터를 지나 과천봉담간 고속도로 아래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것이 왕림마을 비석이고 그 뒷편으로 '청풍김씨묘문'이라고 쓴 비석이 나온다. 청풍김씨묘문비기문비 1751년 정조대 영의정을 역임한 김치인이 국서체인 한호의 석봉체를 집자하여 건립한 것으로 1991년 4월 세운 기문비(규택[奎澤] 지음)에 따르면 원래 동입구 복전동(卜前洞) 초입에 세웠는데,..

논산 명재 고택

논산 명재 고택 2019. 4. 9.(화) 한 시대를 살펴볼 때 그 시대의 인물이 시대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어떻게 규정되야 하는가? 조선후기 개국 초부터 있었던 정치세력의 양상은 논산 명재 고택의 주인공이 시대를 아우를 때 첨예한 대립을 넘어 충역을 다투는 피비린내를 겪어야 했다. 그 시대가 있기까지 흐름을 '우리 궁궐 이야기'의 주인공 홍순민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통 해 살펴본다. 시비인가, 정사인가, 충역인가? 2017. 3. 12. 지금 조선정치사를 개관하는 까닭 조선왕조를 개창한 세력은 당연히 권력집단이 되었다. 그들은 서로 싸워서 결국 권력이 임금과 임금을 옹위하는 소수 인물들에게 집중되었다. 이들을 훈구파라고 한다. 임금과 훈구파의 독단에 대해서 문제제기하고 대두하는..

연성촌사.. 박동량

연성촌사(蓮城村舍) 연성촌사는 조선 선조대 중신 박동량(朴東亮,1569~1635)의 손자인 박세채(朴世采, 1631~1695)가 남긴 시에서 시흥시 군자동 가능골과 비앞골을 이르는 말이다. 박세채는 시흥시의 가래울마을에 연고가 있는 양명학자 정제두(鄭齊斗)의 스승으로 이 마을 동쪽으로 가깝게 가래울이 위치한다. 그리고 박세채는 당대 소론의 영수였다. 노소분당과 갈등이 첨예하였으나 그는 노론의 영수 송시열의 손자인 송순석을 사위로 맞았을 정도로 평소 당론에 엄격하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노소의 균형을 이루었다. 이러한 박세채 선생이 종손이자 사촌형인 박세교(朴世橋, 1611∼1663)가 있는 가능골과 비앞골의 연성촌사를 찾아서 시를 남겼다. 박세교는 금양위(禁陽尉) 박미(朴瀰)와 정안옹주(貞安翁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