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3

내포 답사,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내포 답사,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추사, 그가 완성한 서체가 추사체로 조선 대표의 서체로 추앙되듯 흔히 우리는 김정희를 추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추사 선생과 그를 따르던 후학들은 김정희를 완당이라고 부른다. 완당은 김정희가 스승으로 모신 청나라 학자 완원의 제자라는 뜻이다. 이렇듯 김정희는 추사, 완당 등 그가 쓴 당호가 무려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예산의 추사 고택은 김정희로 인해 유명하였지만 실제로 이 고택은 그의 증조부 월성위 김한신 때문이다. 김한신은 영조의 부마로 화순옹주의 남편이다. 국혼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아버지 김흥경이 영의정을 지낸 명문이었기 때문이다. 딸 화순옹주를 아낀 영조는 이 저택을 지을 당시 충청도 53개 군현에게 한 칸씩 비용을 내게 하여 총 53칸의 건물지었다...

내포 답사, 추사 김정희 선생 유적

내포 답사 『擇里志』 내포(內浦)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제일 좋은 곳이다. 공주에서 서북편으로 이백리쯤 되는 곳에 가야산(伽倻山)이 있다.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大澤)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했는데, 곧 서해(西海)가 쑥 들어온 곳이다. 동쪽은 큰 들판이고 들 가운데 또 큰 개(浦) 하나가 있다. 개는 유궁진(由宮津, 삽교천 지역)이라 하며, 밀물이 가득 차지 않으면 배를 이용할 수가 없다. 남쪽은 오서산(烏棲山)이 막아, 다만 산 동남편으로 공주와 통할 뿐인데, 오서산은 가야산에서 온 산맥이다. 가야산의 앞뒤에 잇는 열 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지세가 한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년 병자년 남북 두 차례의 난리에도 여기에는 적군이 들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