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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가 ‘차희식’ 선생

수원군 우정․장안면의 3․1운동을 주도한 3월의 독립운동가 ‘차희식’ 선생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화성지역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차희식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주역들 위 첫째 줄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그 성명은 김교철, 김덕근, 김덕삼, 김명우, 김명호(김여근), 정순영, 윤영선, 백순익, 김종학, 김응오, 차병한, 차병혁, 차희식, 김응식, 정서송 선생 차희식(1870. 11. 10-1939. 11. 7음) 선생은 무학문맹으로 성격은 쾌활하며 교재력도 있고 힘도 장사였다. 당시 구슬리(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에 살았는데 처가가 전주이씨 양영대군파로 구슬리에 거주하였기 때문이다. 1915년 수원경찰서에서 도박죄로 태형 60대의 처분..

호랑이와 싸운 최루백

호랑이와 싸운 효자 최루백 조선시대 윤리서인「삼강행실도」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인물이 나온다. 바로 수원 최씨 최루백(崔婁伯)의 이야기로 호랑이를 잡아 효도를 다한 이야기이다. “최루백은 고려 시대 수주부(수원)의 호장 최상저에 아들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최루백은 당장 산으로 올라가 그 호랑이를 잡으려고 하였다. 이때 최루백의 나이는 15세에 불과했는데 놀란 어머니가 남편에 이어 아들마저 잃게 될까봐 만류하였다. 이 때 최루백은 ‘어머니! 어떻게 아버지 원수를 갚지 않고 이대로 견딘단 말입니까.’라고하면서 즉시 도끼를 메고 호랑이의 발자국을 따라가니, 산등성이 저만치 호랑이가 사람 하나를 다 먹은 뒤, 배가 불러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최루백은 호랑이 앞으로 달..

만주에 산화한 안중근

만주에 산화한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러시아)지구군사령관 안중근(1879-1910)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崔在亨, 1858- 1920)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발행되는 '해조신문'에 실린 동의회 취지서로 안중근 의사가 최재형, 이범윤, 엄인섭 등과 동의회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하였음으로 말해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이토를 사살하고 러시아 검찰관 앞에서의 예비조사와 이후 관동도독부지방법원 원장 마나베(眞鎬十藏)의 일제법정에 선 안중근 의사는 당시 만국공법(국제법)에 의거하여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지구군사령관으로서 교전국 군인으로 대우 받길 밝혔다. 이는 단순한 살인 피고가 아닌 전쟁 포로로 대우 받아 현 이토 사살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우리나..